여현호 논설위원
아침햇발
이명박 대통령이 반격에 나섰다. 예상했던 일이긴 하지만, 전격적이고 표변이다. 6월19일, 대통령은 “촛불을 바라보며 제 자신을 자책했다”고 말했다. 6월24일, 그는 촛불집회에 대한 엄격한 대처 뜻을 밝혔다. 6월25일, 집회 참가자들이 마구잡이로 연행됐다. 6월26일, 장관 고시가 발효됐다.
어떻게 비칠지는 분명하다. 상황 따라 말을 바꾼 모양새다. 국민을 상대로 거짓 항복과 습격의 군사작전을 벌인 것 같기도 하다.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보긴 더 어렵게 됐다.
나름의 계산은 있었을 것이다. 장기간의 촛불집회로 다들 지쳤겠지, 참가자가 줄었으니 소수로 고립됐을 때 진압하면 된다, 잡음이 있어도 더 커지기야 하겠느냐, 빨리 털어 버리고 할일을 하자 따위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일부는 맞을 수 있다. 그래서 이젠 일단락됐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게다.
과연 그럴까. 그런 계산대로라면 대통령은 이제 제구실을 해야 한다. 지금, 그런 기대는 무망하다. 여러 사람의 지적대로 이명박 정부에는 동력도, 목표도, 능력도 보이지 않는다. ‘삼중고’가 달리 없다.
정권의 동력은 일정 이상의 국민 지지다. ‘침묵의 나선’ 이론 등을 들이댈 것도 없이, 20% 안팎의 지지율로는 어떤 일도 힘있게 추진할 수 없다. 무리했다가는 갈등만 커진다. 지지율이란 오르내리기 마련이라고 말할 수도 없게 됐다. 불신이 워낙 커진 탓이다. 촛불 정국에서 그의 별명은 ‘쥐’와 ‘2MB’다. 심한 욕이지만 이미 굳어졌다. 그의 처신 때문이다. ‘쥐’가 약삭빠르고 믿을 수 없다는 이미지라면, ‘2MB’는 ‘용량 부족’과 디지털 시대 국민의 참여형 팔로십에 어울리지 않는 구시대 일방적 리더십 따위 ‘지체 현상’을 꼬집는 말일 게다. 곧, 도덕성과 능력 모두에 대한 불신이다.
내놓은 공약의 상당수를 폐기해야 할 처지에선 정권의 지향과 정체성이 흐릿해진다. 이 대통령은 개발과 성장의 논리, 대북 대결의 논리로 당선됐다. 하지만,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물가 앙등 앞에 성장 우선 정책은 헛발질이었다. 개발주의의 상징인 대운하도 사실상 접었다. 북핵 문제와 동북아의 구도 변화가 줄달음치는 상황에서 철모르는 대결 논리는 시대착오였다. 남북관계라는 지렛대를 잃은 한국은 전략적 동맹이라는 미국한테 무시로 수모와 홀대를 받는다. 따져보면 남은 게 없다.
이렇게 된 것은 애초 흐름과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짚지 못한 무능 탓이다. 잘못을 진작 고치려 하지 않은 고집 때문이기도 하다. 달리 누구를 원망할 게 아니다. 뭉뚱그리면 총체적인 리더십 위기다. 한국경제가 ‘저성장-고물가-경상수지 적자’의 트릴레마(trilemma), 곧 삼자택일의 궁지에 빠진 때 이런 리더십 위기가 닥쳤으니 더욱 암담하다. 경제 말고, 민주주의의 진전 요구에 맞닥뜨린 정치, 궤도를 다시 잡아야 할 외교까지의 삼중고이기도 하다. 권위주의 정부 때나 통하던 지시와 독주의 리더십으로는 헤쳐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해도 삼중고는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리더십은 선거로 뽑혔다는 합법적 권위조차 인정받지 못할 정도로 흔들리는데도, 대통령제는 건재하다. 검찰과 경찰, 관료체제가 대통령 말 한 마디에 움직인다. 대통령이 여기에 기대려 한다면 지금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렇다고 정당 기능의 확대로 이를 보완하거나, 내각제로 눈길을 돌리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지금의 여당이나 야당이 그런 구실을 감당할 성싶지 않기 때문이다. 리더십 위기에 제도의 한계가 분명한데도 대안은 마땅찮은 형국이다.
대통령은 이런 딱한 상황을 이해나 하고 있을까.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대통령은 이런 딱한 상황을 이해나 하고 있을까.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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