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
유레카
어느 조직이건 두 가지를 잘해야 진화를 계속할 수 있다. 우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능숙해야 한다. 비슷한 일을 하는 경쟁자가 많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잘 선택해야 한다. 모든 분야에서 변화가 심한 요즘에는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나가는 것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곧 능숙한 집행과 적절한 탐색은 조직 진화의 필수조건이다. 조직의 자원도 집행과 탐색에 균형 있게 배분돼야 한다.
이런 원리는 공적 조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집행과 탐색에 실패한 사적 조직은 대개 문을 닫는다. 반면 공적 조직은 쉽게 사라지지는 않지만 국민의 거센 비난을 받게 된다. 가장 큰 공적 조직인 정부의 경우 집행과 탐색은 각각 대국민 서비스(효율성)와 충실한 민의 반영(민주주의)에 대응한다. 정부를 이끄는 대통령도 다르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복원과 대중교통 체제 개편, 뉴타운 사업 등을 추진해 유명해졌다. 모두 탐색보다는 집행에 더 관련된 것들이다. ‘무엇을 하느냐’보다는 ‘얼마나 잘하느냐’에 시민의 관심이 컸던 사안이라는 얘기다. 이 대통령은 이들 사업을 비교적 짧은 시간에 해냈다. 사람마다 평가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집행 면에서는 나름대로 역량을 보여준 셈이다.
그런 이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된 이유는 서울시장 때처럼 불도저식 집행만 생각한 데 있다. 대통령으로서 이런 ‘민주주의 결핍’은 치명적인 결함이 된다. 기업 등 사적 조직이라면 생존 여부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다른 해법이 있을 리 없다. 무슨 일을 할지 폭넓게 여론을 수렴하고, 모인 국민의 뜻에 따라 차근차근 집행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의 말을 듣기보다 억누르고 있으니 걱정이다. 진화가 아니라 퇴화 쪽으로 가는 듯하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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