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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객원논설위원칼럼] 변심은 무죄 / 이태수

등록 2008-07-02 19:35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객원논설위원칼럼
도대체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사장 시절, 현대건설 공화국에서는 수주받는 일은 그리도 식은 죽 먹기였고, 직원들은 죽으라면 죽는시늉까지 하며 충성으로 나의 입지전에 발맞추어 주지 않았나. 시장 시절, 서울공화국에서는 파라면 팠고, 덮으라면 덮으면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던 시정 업무. 반발과 비판, 시행착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화려한 찬사로 오늘날 나를 이 자리에 오게 하지 않았던가.

그 시절을 생각하면 오늘의 이러한 사면초가 현상은 이해할 수 없다. 그때만큼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또 그때 나를 도왔던 이들과 함께한다면 못 할 것이 없다 믿었는데 ….

그러나 이 시간, 저 촛불의 두려운 행렬. 마침내 가톨릭 사제들이 87년 이후 공개리에 시국미사를 하면서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고 준열히 꾸짖는 저 소리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통렬한 반성을 하게 한다.

그렇다. 경제만 성장하면 다른 모든 것이 잘되리란 내 생각은 얼마나 천박한 레퍼토리였던가. 성장해도 분배가 되지 않는 우리의 현실, 이미 성장의 동력을 상실해버린 우리의 경제사회 구조를 변화시키지 않고는 성장은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지난 정부 일 중 유일하게 승계할 만한 업적이라 믿었는데, 이것이야말로 승계하지 말아야 할 제1호다. 생각해 보자. 경량급 권투선수가 헤비급 선수와 보호장구도 없이 무한 라운드로 싸운다는 것이 제정신인가?

작은 정부? 이것이야말로 내가 행한 최대의 오판이었다. 이 나라 관료들은 최고의 공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공공의 적은 더더욱 아니다. 공무원 숫자가 이렇게 적으니 국민의 삶을 위해 일할 이들이 없고 결국 수입쇠고기 검역과 단속할 인력마저 절대 부족한 꼴이 되지 않았던가.

민영화하면 된다고? 폴리 토인비의 <거세된 희망>을 읽어보니 내가 숭배했던 대처 수상의 민영화가 얼마나 공공기관을 황폐화시켰는지를 알겠더구먼.

미국산 쇠고기? 결자해지라고 내가 해결한다. 부시에게 무엇 좀 얻어보려 화끈하게 열었는데, 최대의 실수였다. 미국과의 무역 규모 비중도 점점 줄어드는 시점에 목맬 이유 없겠다.

그렇다. 내가 할 일은 국민에게 시장이 할 수 없는 공공의 복지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기초연금, 아동수당, 무상보육, 고교 의무교육, 대학 지역균형 선발제, 비정규직 감축, 충실한 의료보장 … 이런 일들에 목숨 걸고 최선을 다해 보자. 국민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복지 세상을 만들어 보자. 그러고 보니 대선 공약집에 이미 담아놨던 것이었는데 건성으로만 생각하고 있었군.

필요한 재원? 국민에게 원성은 들을 수 있지만 어차피 단임이다. 국가 기능의 정상화를 위해 세율은 올려야 하겠고, 조세 투명성을 기하고 조세감면도 과감히 축소하련다. 지금까지 내 주위에서 나에게 잘못된 논리를 속삭인 이 모든 인사들을 멀리하고 새로운 인재를 찾아 나서자. 정말 국민만을 섬기는 대통령이 무엇인지 보여 주리라!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아멘.

그의 이러한 변심은 무죄다. 진정 국민을 위한 변심은 위정자의 최대 덕목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 사회 변혁의 역사가 위정자 한 사람의 변심으로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리라. 그러나 이미 촛불의 민심은 우리 사회의 희망과 변혁을 이끌 수 있는 ‘집단지성’이란 주체가 서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래서 이제 남은 것은 집권세력의 변심뿐이다.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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