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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방송사 사장? 꿈도 꾸지 마! / 김종철

등록 2008-07-03 20:23

김종철 논설위원
김종철 논설위원
아침햇발
총선이나 대선 때마다 그랬지만, 지난해 대선 때는 유독 많은 언론인이 정치권으로 옮겼다. 전직 신문사 주필과 방송사 간부에서 현직 특파원까지 수십 명이 줄줄이 커밍아웃했다. 촉수가 민감한 ‘정치 언론인’(폴리널리스트)들이 몰린 곳은 당선이 가장 유력했던 이명박 후보 쪽이었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끈 사람은 <한국방송>(KBS) 이사를 지낸 김인규씨였다. 그는 2006년 한국방송 사장 공모 때 최종 후보에 오른데다 자기 회사의 2002년 대선 보도가 편파적이었다고 주장하는 박사논문을 써 현 여권한테 인정받는 등 반정연주 ‘대표 주자’로 부상했다. 그래서 지난해 그가 방송전략실장이라는 명함으로 이명박 캠프에 나타났을 때 이제 사장 꿈을 접은 모양이구나 생각했다. 적어도 명시적으로 정치권에 줄 선 사람은 방송사 사장이 될 수 없다는 게 노무현 정부 시절 서동구씨 사례가 가르쳐준 교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꿈을 버린 게 아니었다. 대선 승리 이후 청와대 정무수석 자리나 지난 4월 총선 때 지역구 출마 제의 등을 ‘과감하게’ 모두 뿌리쳤다. 그때부터 김씨의 한국방송 사장 내정설이 나돌았지만, 상식적인 판단으로는 저 양반이 대체 뭘 믿고 저러나 매우 의아했다. 최근에야 그 수수께끼가 풀렸다. 사장을 향해 열심히 뛰고 있는 김씨를 얼마 전 만난 한 지인한테 들은 얘기다. “당신이 전문성 등의 면에서는 자격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사장을 할 생각이었다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고 한다. 그랬더니 김씨는 “낸들 왜 모르겠느냐. 그러나 저쪽에서 캠프에 안 들어오면 사장될 생각은 아예 꿈도 꾸지 말라고 하더라”고 답하더라는 것이다. 단순히 코드가 같다는 것만으로는 믿을 수 없으니 확실하게 ‘이명박 사람’이 되라는 주문이다.

 자기 합리화를 위한 김씨의 변명일 수도 있겠지만, 전후 사정이나 이 정부가 방송 장악을 위해 벌이는 여러 작태를 보면 그러고도 남았음이 분명하다. 권력의 그런 요구가 김씨에게만 한정됐을 리 없다. 이 정권과 타락한 언론인들이 맺은 밀약이 착착 ‘이행’되고 있지 않는가. 창사 이후 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와이티엔>(YTN)은 대통령의 대선 참모였던 구본홍(전 엠비시 보도본부장)씨를 사장으로 맞기 일보 직전이다. 오는 14일 주주총회에서 결판이 난다. 앞서 임명된 <아리랑 국제방송>의 정국록(전 진주 엠비시 사장) 사장과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의 이몽룡(전 케이비에스 부산총국장) 사장,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양휘부(전 케이비에스 창원총국장) 사장도 모두 이명박 캠프에 줄 섰던 사람들이다.

 이대로라면 김씨의 한국방송 낙하산 진입도 멀지 않은 셈이다. 그 길을 닦느라 감사원·검찰 등 권력기관이 총동원돼 정연주 사장 흔들기를 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대통령 멘토인 최시중씨가 방송통신위원장을 장악한 이후 신문과 방송 겸업 허용, 한국방송 2텔레비전과 <문화방송> 민영화 등 제도적으로 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여러 정책도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국민의 성원과 방송인들의 피땀으로 한 발짝씩 진전돼 온 방송 민주화가 자칫 20년 전으로 되돌아갈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동안 이룬 성과가 허무하게 깨질 것 같지는 않다. 기자·프로듀서 등 방송인들이 다시 머리띠를 둘러매고 있고, 촛불도 지켜보고 있다. 이제 이들은 광장에서, 저들이 밀실에서 나눈 속삭임을 함성으로 되돌려 주고 있다. “대통령 측근이 사장으로 오겠다고? 아예 꿈도 꾸지 마라!”

김종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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