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시론
‘대한민국 건국 60돌’ 기념행사가 대대적으로 준비되고 있다. 정부는 60명의 위원으로 기념사업위원회를 조직하고 주요 사업 60가지를 추진하고 있다. 예순이면 개인도 수연을 베풀어 축하행사를 하는데 하물며 정부로서야 더욱 대대적인 행사를 벌일 수 있지 않겠는가. 2차대전 후 ‘민주화와 산업화를 가장 성공적으로 달성’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면 더욱 그럴 수 있다.
원래 이 사업은 민간에서 추진하던 것인데 정부가 안게 되었다고 한다. 민간 차원에서 하겠다면, 비록 견해가 다르다 하더라도, 이의를 건다거나 시비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 그러나 나라에서 ‘건국 60년’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하겠다면, 그건 차원이 다르다. 국민적 합의를 기초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국가적 행사에 앞서 올해가 건국 60년인가, 정부 수립 60년인가 하는 문제부터 정리해야 한다.
‘대한민국 건국 60년’ 기념행사 계획에 대해 학계에서는 용어의 적절성에 이견을 보이면서 ‘정부 수립 60년’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를 내비치는 분들도 있다. 제헌 헌법과 현행 헌법 정신에 비춰 임시정부의 전통을 대한민국사에 산입해야 한다는 견해다. 그러나 정부의 ‘대한민국 건국 60년’ 계획은 이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느낌이다. 그러니 먼저 학계의 진지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것이 용납될 수 있다면, 올해 행사를 일단 ‘정부 수립 60주년 기념행사’로 치르고 건국 문제는 시간을 두고 학계의 의견을 모아 보는 것이 어떨까.
학계 논의를 제안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1948년 정부 수립 당시 사회의 지도그룹에서는 ‘대한민국 30년’을 공공연히 사용했다. 백범을 비롯한 임정계는 물론이고, 이승만도 제헌국회 개원식 축사에서 대한민국 민주정부의 재건을 언급하면서 국회 개원일인 1948년 5월31일이 민국의 부활일임을 공포하고 민국 연호를 29년 전에서 기산하겠다고 했다. 이는 1919년에 대한민국이 성립되었다는 데 근거하고 있다. 그 뒤 대통령에 당선된 이승만은, 단기 연호가 군정 3년 동안 공문서에 사용되어 왔음에도, 1948년을 대한민국 30년이라고 썼다. 이를 따른다면 올해는 ‘대한민국 90년’ ‘정부 수립 60주년’에 해당된다.
행정부와는 달리 단기 연호를 사용하던 국회는 연호 통일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제59차 본회의에서 이 문제를 토론했다. 역사연대 표기와 공문서상의 편의성을 주장한 이들은 단기 사용을 강조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30년’을 주장한 의원들은 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을 일으켜 일제에 선전포고까지 했으며 연합국과 함께 승리한 역사성을 강조했다. 그들은 ‘대한민국 30년’에 녹아 있는, 일제 통치를 거부한 독립의지를 소중히 여겼다. 혹시라도 ‘건국 60년 기념행사’의 이념적 기반이 ‘대한민국 30년’ 연호 사용에서 보인 자주독립의 성격을 무시하고 일제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식민지 근대화론’ 수용과 연관된 것이 아닐까 우려한다면 지나칠까.
제헌국회는 단기 사용을 의결했지만 당시 누구도 ‘대한민국 30년’을 부정하진 않았다. 국회 의결대로 단기 사용을 공포한 이승만은 ‘대한민국 30년’ 주장을 명확하게 설명했다. 그는 우리의 민주정치 제도가 남의 조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고, 기미 독립운동으로 민국정부를 세워 세계에 공포함으로써 이뤄졌으며, 또 수천년의 민족사에서 기미년 독립선언이 미국의 독립선언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뒤에도 기회만 있으면 ‘대한민국 30년’을 주장했다.
‘건국 60년’을 고집하는 근저에는 ‘대한민국 국부 이승만’에 대한 추앙심이 전제되어 있다고 보는데, 왜 이승만의 이런 역사의식은 공유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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