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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대미 청부외교와 6자 회담 / 김지석

등록 2008-07-10 20:23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 논설위원
아침햇발
6자 회담이 처음 열린 것은 2003년 8월이다. 다섯 해 전이다. 회담이 앞으로 그 정도 더 계속될 것으로 보면 절반쯤 온 셈이다. 지난해 10월 열린 6차 2단계 회담에 이어 새 회담이 어제 막을 올렸다. 후반전의 시작이다.

물론 내용으로 보면 아직 초기단계다. 6자 회담의 최종 목표는 북한 핵 폐기를 포함한 한반도 비핵화, 북-미 및 북-일 관계 정상화, 한반도·동북아 평화체제 수립 등이다. 이제까지 한 일은 이 가운데 본격적인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준비작업에 그친다. 다른 목표는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했다. 그렇다고 비관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모두 핵 폐기와 동시에 진척될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황무지를 개간해 첫 싹을 틔우고 나면 그 다음에는 여러 작물이 한꺼번에 자라는 법이다.

애초 미국이 볼 때 6자 회담은 일종의 ‘청부외교’ 틀이었다. 당시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대화 대신 항복을 요구했다. 미국은 특히 회담 의장국인 중국을 활용해 북한을 굴복시키려 했다. 그 결과 회담은 2년여 공전했다. 6자 회담이 눈에 띄게 진전된 것은 미국이 북한과 사실상 직접 협상을 시작하면서부터다. 6자 회담의 두 분수령인 2005년 9·19 공동성명과 2007년 2·13 합의는 그렇게 이뤄졌다. 청부외교는 정답이 아니었다. 이제 거꾸로 북-미 협상이 6자 회담을 이끄는 형국이 됐다.

그러는 사이에 6자 회담이라는 틀도 진화했다. 6자 회담은 우선 한반도 비핵화의 이행을 보장하고 감시할 핵심 주체로 자리잡았다. 또한, 참가국 모두 한반도·동북아 평화체제를 논의할 주요 무대로 생각하고 있다. 6자 회담의 국제적 위상은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등락을 거듭한 것은 6자 회담 내 한국의 위치다. 우리나라는 북한과 미국이 정면으로 맞서던 초기에는 별 역할을 못했다. 양쪽과 다 말이 통하는 중국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졌다. 2005년 6월 우리 정부의 대북 ‘중대 제안’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북한과 미국 둘 다 우리 뜻에 호응했다. 이를 바탕으로 9·19 성명이 나왔다. 이때부터 시작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은 지난해 말 6차 2단계 회담 때까지 이어졌다. 남북 관계도 상승 기류를 탔다.

지금은 거꾸로다. 북한과 미국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인다. 최근 상황 진전의 토대가 된 것은 지난 4월 북-미 싱가포르 합의다. 우리나라는 전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정부는 오히려 뒤늦게 시비를 거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핵 신고와 관련해 ‘핵무기가 신고되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신고 내용 검증을 계기로 대북 협상파를 좌초시키려는 미국 내 강경파와 비슷한 톤이다. 10여 년 전 김영삼 정권 때도 그랬다. 당시 정부는 미국이 북한과 접촉하는 것도 반대하다가 결국 경수로 비용만 떠안았다.

6자 회담 참가국들에 대한 우리나라의 영향력은 회담 시작 이후 최악이다. 그래서 미국에 기댄다. 정부는 심지어 남북 관계와 관련해서도 미국이 북한을 설득해 주기를 바라는 모습이다. 스스로 대북정책을 재정립하면 그만인데도 미국 쪽을 쳐다본다. 자가당착이다. 나의 의지보다 남을 우선하는 청부외교 행태다. 약자의 청부외교는 무력한 종속외교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6자 회담이 진전될수록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많아진다. 핵 폐기 등을 다룰 3단계에 진입하면 논의되는 하나하나가 우리 앞날에 큰 영향을 끼친다. 당장 이번 회담부터 걱정이다. 청부외교로는 안 된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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