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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5년은 너무 길다 / 정석구

등록 2008-07-14 21:03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아침햇발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 부닥쳤을 때 그에 대응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문제의 뿌리를 찾아 그것을 해소하는 것이 첫째 방법일 것이다. 원인은 놔두고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제거한 채 넘어가기도 한다. 당장은 시끄럽고 귀찮더라도 ‘세월이 약’이라며 그냥 무시하고 가는 방법도 있다.

첫째 방법이 가장 바람직스럽긴 하다. 그러려면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과 문제 해결 능력이 있어야 한다. 상당한 인내도 필요하다. 때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래서 둘째나 셋째 방법을 택하는 경우가 적잖다. 어떤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그동안 살아온 방식에 뭔가 잘못이 있으며, 자신이 외부로부터 부정당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존재와 삶의 방식이 부정당하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자신의 방식에 맞게 뜯어고침으로써 사태를 풀어가려고 한다. 결국, 문제는 근원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채 안으로 곪아간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길을 가고 있을까. 첫째 길은 아닌 것 같다. 취임 이후 위기가 닥칠 때마다 몇 차례 고개를 숙였지만 곧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는 자신에 대한 문제 제기를 무시하고, 억압하려 하고 있다. 계속 밀리다간 그동안 살아온 자신의 삶의 방식이 완전히 부정당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작용했으리라.

왜 촛불집회가 두 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지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자신의 잣대로 촛불집회의 원인을 해석하고, 자기 방식대로 해결하려 한다. 엉뚱한 데서 해결책을 찾고 있으니 촛불이 꺼질 리 없다.

그러다 보니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잠재우는 둘째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촛불만 끄면 된다는 식이다. 지난주말, 새 잔디로 깔끔하게 단장된 서울광장은 경찰차로 원천봉쇄됐다. 모처럼 이 정부가 바라는 법과 질서가 완벽하게 구현된 공간이 되었다. 아마 이런 식이라면 조만간 국내 양초공장 문을 모두 닫게 할지도 모르겠다. 양초가 없으면 아예 촛불을 못 켤 테니.

인터넷과 방송에 대한 대응도 마찬가지다. 온라인에서 ‘조·중·동 광고 압박 운동’을 하는 누리꾼만 없애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피디수첩’ 등 특정 프로그램에 대한 검찰 수사도 같은 맥락이다. 합법적 물리력을 갖고 있는 정부가 즐겨 쓰는 달콤한 독약이다.

위법 논란 등 숱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장들을 막무가내로 쫓아내고 낙하산 인사를 강행하는 것은 전형적인 세 번째 방식이다. 아무리 떠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조용해질 테니 그냥 무시하고 내 길 가겠다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간간이 돌발상황이 발생해 여론이 다른 쪽으로 쏠리는 덕을 보기도 한다.


이 대통령이 국민과 갈등을 빚고 있는 여러 사안을 이런 식으로 대응한다면 문제는 결코 풀리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 잠잠해질 수는 있다. 그러나 안으로 점점 곪아가고 폭발력만 키워간다. 억압된 사회적 갈등이 어떤 식으로 폭발해 왔는지 우리 현대사는 잘 보여준다.

문제를 바로 보고 해결할 지혜와 능력이 없으면 역사적 경험에서라도 배워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자신만은 예외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오만이다.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 5년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치는 좋은 시간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 사이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은 너무 크다. 깨달음의 기간은 짧을수록 좋다. ‘이대로 5년’은 너무 길다.

정석구 논설위원실장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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