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현호 논설위원
아침햇발
‘위하’(威 )란 말이 있다. ‘겁주기’란 뜻이니 위협과 비슷한 말이다. 형법 이론 가운데 ‘위하설’은 형벌의 목적이 잠재적 범죄자들을 위협함으로써 범죄를 예방하는 데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선 반론이 많다. 사형 등 극형에 처한다고 강력 범죄가 실제로 줄어드느냐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대체로 위하설은 좀 낡아 보인다. 교정을 강조하는 현대 형사정책 이념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 위하설을 요즘 한국 검찰이 채택한 것 같다. ‘조선·중앙·동아일보 광고 싣지 말기’ 운동 수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광고 불매운동이 처벌할 만한 죄가 되는지에 대해선 애초부터 아니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느 판사는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고, 어느 검사는 피식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설령 죄가 된다 해도 그 처벌은 벌금형을 넘기 어렵다고 한다. 기소해 재판까지 할 만한 사안은 아닌 셈이다. 적어도, 법무부 장관의 특별지시나 검찰의 전담수사팀 구성 등으로 요란을 떨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걸 두고 ‘소 잡는 칼로 닭 잡는다’고 할 것이다.
큰 칼을 든 뜻은 쉽게 짐작된다. 검찰은 누리꾼들을 사실상 공개적으로 출국금지했고, 댓글을 단 사람까지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보란 듯 필요 이상의 압수수색도 했다. 일부러 소리를 내는 것 같다. 칼을 보이며 입 다물라고 위협하는 모양새니, 바로 ‘위하 효과’를 노린 것이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분명하다. 불매운동의 대상인 조·중·동이 직접 수혜자다. 이명박 정부도 비판 여론의 확산을 저지할 수 있게 됐다. 애초 수사가 장관 지시로 시작됐고, 그 뒤엔 조·중·동의 아우성이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이쯤 되면 그림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 그림 속에서 큰 칼 들고선 검찰의 모습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청부 해결사 같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이것 말고도 검찰은 요즘 궂은일에 자주 동원된다. 특별수사팀까지 만들어 광우병에 대한 전반적인 진실 규명을 하겠다고 나선 ‘피디수첩’ 수사는, 미국 쇠고기 수입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쪽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검찰이 법률적으로 개입할 영역은 애초 아니다. 검찰도 진작 이런 식의 진상 규명 작업은 더는 하지 않겠다고 못박은 바 있다.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 소환도, 그 절차와 적용 혐의가 적정한지, 공소 유지는 가능한지 검찰 스스로 되물어야 한다. 모두 수사권 남용 논란이 일 수밖에 없는 일들이다.
또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반환 선언으로 수그러들었지만, 청와대 국정자료 유출 논란에서도 검찰 고발이 거론됐다. 그것만으로도 정치적 압박이니, 또다시 검찰이 위력 과시에 동원될 뻔했다. 그런 일에 쓰자고 검사들을 둔 건 아닐 게다.
더한 문제는 검찰이 이를 그리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하는 일 하나하나가 언론·표현의 자유 등 헌법상의 기본권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인데도, 법률가 조직인 검찰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하다. 정치적 목적에 동원됐다는 점에선 같은 ‘정치 검찰’이지만 하는 일들은 군사정권 때보다 더 좀스럽고 궁색한데도, 내부에선 이를 부끄러워하는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집단적으로 도덕 불감증의 늪에 빠진 것 같다.
대검찰청은 서울 서초구 반포로 706번지에 있다. 청와대가 있는 종로구 세종로 1번지가 아니다. 검찰은 정치나 정권의 논리를 따를 게 아니라 서초동 법조계의 논리와 윤리라도 지키려 노력해야 한다. 이대로 가다간 검찰한테 ‘소 잡는 칼’을 줄 이유가 있느냐는 말까지 나올 수 있다.
여현호 논설위원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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