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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YTN 주총 사태, 영화와 현실 사이에서 / 허성우

등록 2008-07-23 21:52

허성우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연구교수
허성우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연구교수
기고
최근 이명박 대통령 홍보특보였던 구본홍씨의 사장 선임 안건을 처리한 <와이티엔>(YTN) 16기 임시주주총회는 매우 영화적 사건이다. 최근 한국 영화는 예술성과 작품성 면에서뿐만 아니라 폭력성 면에서도 크게 발전하면서 할리우드식 폭력과 구분되는 한국적 폭력의 이미지를 생산하고 있다. <공공의 적>이나 <조폭 마누라>들에서 연속적으로 흐르는 폭력 이미지는 이미 세간의 일상용어가 된 ‘조폭’이다. <강철중>은 그들의 예의와 정의는 오로지 형님과 조직 보위, 돈과 권력 앞에서만 작동하며 사회적 약자들의 인격과 신체를 서슴없이 파괴한다는 점에서 그들을 ‘공공의 적’이라 호명했다. 나는 어떤 특정한 사회 집단을 동질화하고 구획화하며 주변화하는 문화에 저항하는 부류이다. 그래서 내가 현실에서 만나지 못한 그들을 ‘조폭’이라는 영화적 개념 안에 박제화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과 나는 같은 시민으로 이 땅을 살아간다. ‘공공의 적’으로서의 ‘조폭’은 영화적 이미지일 뿐일지도 모른다. 마치 내가 운명적으로 페미니즘을 만나서 그것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그들도 운명적으로 ‘조폭’을 만나 그것으로 살아가는 것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7월18일 아침 뜻하지 않게 <한겨레>에서 살아 있는 그들을 만났다. 언론자유가 민주주의 핵심 원리의 하나임은 많은 십대들도 아는 상식이다. 참여정부 시기 대통령 특보 출신 서동구씨의 <한국방송>(KBS) 사장 추천을 그가 대통령 측근이라는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했던 <조선> <중앙> <동아> 등은 이제 구본홍씨가 이명박 대통령 측근이므로 권력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유로 그의 와이티엔 사장 취임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다시 반대한다. 와이티엔 사쪽도 이들 주류 언론과 같은 편에 섰다. 조합원들의 회의장 입장을 막고 사장 선임 안건을 마치 전시 상황처럼 40초 만에 처리했던 한국 굴지의 언론사 주주총회. 보도에 따르면 이 40초의 성공은 동원된 ‘용역업체 직원 200여명’의 물리적 힘을 통해 가능했다. 이들 용역업체 직원들이란 대체 누구인가. 신문의 사진에 등장한 이들은 검은 양복, 백색 셔츠에 짧은 머리, 건장한 신체의 젊은 남자들, 앗, 영화 속 바로 그 이미지였다.

민주사회의 공공성을 상징하고 구현하는 언론사의 주주총회를 왜 ‘공공의 적’들이 지키고 있을까? 사장 선임을 저지하면서 공공성을 지키려던 사람들의 ‘공공성’은 짓밟혔고, 사장 선임을 처리한 사쪽의 ‘공공성’은 승리했다. 승리한 사람들과 ‘공공의 적’들은 그날 밤 영화처럼 고급 호텔에서 축배를 높이 들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승리한 공공성’은 ‘공공의 적’과 몸을 섞음으로써 그것의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나아가 이들은 사장 선임을 반대하는 자들, 촛불 든 자들, 광우병 쇠고기, 학교 자율화, 민영화와 공공서비스 요금인상, 정부의 폭력적 시위 진압에 반대하는 자들이야말로 ‘공공의 적’이라고 외친다.

영화 속 ‘강철중’의 입장에서 이제 ‘진정한 공공성’과 ‘진정한 공공의 적’을 판별하는 것은 더욱 복잡해졌다. ‘공공의 적’으로서의 ‘조폭’을 잡는 그의 임무는 사명을 다했으므로 사표를 내던지고 영화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올지도 모른다. 이번 와이티엔 주주총회 사건에서 ‘공공의 적’과 몸을 섞으며 탄생한 ‘변종의 공공성’은 한국적 ‘조폭’의 영화적 이미지를 완벽하게 연출했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은 폭력적 쾌락의 영화적 전율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아직 호명되지 않은, 새로운 현실적 전율을 선사한다.

허성우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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