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
유레카
상대를 완벽하게 속이려면 자기 편부터 먼저 속여야 한다고 첩보전 전문가들은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래야 세상의 많은 눈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단, 한 가지 분명한 전제가 있다. 그 속임수를 기획하고 추진한 사람은 항상 진실을 직시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와 어긋나는 일이 가끔 일어난다.
‘사랑과 전쟁에서는 모든 것이 정당하다’는 말이 있다. 하나를 더 더한다면 정치에서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정치에서 거짓말은 흔히 상대의 약점을 과장하는 슬로건을 내놓는 것으로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에 살이 붙어 대중을 오도하고, 나중에는 진실과 완전히 담을 쌓게 된다. 선거전에서는 이때쯤이면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집권세력은 지난 대선 때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슬로건으로 재미를 봤다. 자신들이 10년간 권력을 잃어버렸다는 뜻으로 쓰였다면 이 슬로건은 사실에 부합한다. 그런데 여기에 경제와 교육, 대미·대북 관계 등이 포함되더니, 결국 지난 10년 동안 일어난 모든 것을 부정하는 쪽으로 발전했다. 과장-오도-거짓말로 발전하는 공식 그대로다.
문제는 선거가 끝난 뒤에는 이 슬로건도 사라져야 할 터인데, 집권세력 가운데 많은 이가 아직도 슬로건 내용을 진실이라고 믿는 데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정부가 혼쭐이 난 모든 정책이 이 슬로건과 연관된 ‘과거 정책 뒤집기’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민의 눈은 이미 맑아졌는데, 슬로건을 만든 이들이 스스로 속아 자승자박의 어려움을 자초한 것이다. 자기기만의 파멸적 결과다.
새 집권세력의 방송장악 시도가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잃어버렸던 방송을 손아귀에 넣으면 새로운 출구가 열릴 거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파멸적 자기기만은 여기서도 작용하고 있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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