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객원논설위원칼럼
경기가 불황으로 치닫자 기다렸다는 듯 각종 감세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현재 정부·여당이 계획하고 있는 걸 기초로 할 때 15조원 이상의 세수 감소가 예상된단다. 유가 환급금 4조6천억원, 법인세율 인하로 4년간 8조7천억원, 유류세 인하로 1조3천억원 등등을 합친 수치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재산세, 양도소득세, 근로소득세 등의 완화가 실현되면 2조원에 달하는 감세 효과가 더해진단다.
감세는 정치권에도, 과세의 대상자인 기업과 국민에게도 달콤한 정책다. 그러나 엄밀히 보면 감세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는 실증적 연구가 그리 많지도 않고, 효과가 있다 해도 매우 미미한 수준이라는 게 학계의 연구 결과다. 논리적으로 따지면야 케인스의 유효수요 이론으로 감세는 민간 소비를 촉진시킨다 볼 수 있다. 또한 레퍼곡선에 힘입어 감세는 기업활동과 근로의욕을 부추김으로써 경기를 활성화시킴은 물론, 세수 총량까지도 증대시킨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그러나 케인스이론 안에는 ‘재정지출의 마술’이 동시에 존재한다. 정부가 조세를 거두어 재정지출의 형식을 빌려 다시 지출하면, 민간의 직접 지출에 비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레퍼라는 미국의 무명 경제학자가 재무부 관리를 기다리다 식당의 냅킨에 그리면서 탄생하였다는 레퍼곡선. 그것을 믿고 공급 중시 경제학을 펼쳤던 레이건 정부가 기록한 참담한 경제 성과에서, 이미 감세정책은 폐기된 유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유독 우리나라에서만은 감세정책이 여전히 강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 중 조세부담 수준이 가장 낮은 수준인데도 감세는 절대선으로 간주된다. 유럽의 복지 선진국들이 국내총생산의 절반 정도를 조세로 거두고, 그 중 다시 절반을 복지 지출로 할당하는데, 우리는 사분의 일을 거두어 그것의 사분의 일만 복지 지출로 투여한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성장주의자들은 지난 정부가 복지에 너무 관대했다고 주장한다. 양극화도 더욱 심화되었단다. 따라서 분배정책이 양극화를 부추겼다는 지독한 논리의 비약을 거침없이 행한다. 양극화를 촉진하는 것은 세계화와 국내 경제구조상의 모순이고 지난 정부마저 그것을 반전시킬 만큼의 과감한 구조개혁과 복지지출 확대를 행하지 못함으로써 양극화의 확대 재생산 고리를 끊지 못했다는 생각은 이들에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성장주의자들은 미국이나 일본의 조세 부담률을 들먹이며 우리의 경쟁력을 위해 세율을 더욱 낮추어야 한단다. 그러나 그들 나라는 직접세 중심의 조세정책과 일상적인 재정적자 정책을 통해 복지지출 효과를 극대화하였다는 것은 외면한다. 우리나라의 국가부채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 나라들의 사분의 일 수준이며, 국가부채 비교지수(IGDC)에서도 부채 실적치가 예상치를 훨씬 밑돌고 있다는 사실, 조세격차(tax gap)라는 개념에 입각할 때 현실의 조세율이 일정한 국가부채 비율을 유지할 때의 조세율보다 낮다는 사실도 이들에겐 별 의미가 없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불황의 타개책은 재정적자를 감수하고 더 많은 재정확보를 통한 복지지출의 확대라는 논리는 죽어도 수용되지 않는다.
이 시간 감세 광풍 속에 다시 화려하게 부활한 성장주의자들의 득의양양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사회적 일자리로 주 닷새 일당을 받아 빠듯한 생활을 하다가 올해부터 예산이 줄어 주 나흘만 일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은 어느 가장의 얼굴에 스치는 처절한 고통의 그늘이 두렵다. 두려운 현실을 낳는 성장주의자들의 참을 수 없는 경박한 논리와 현실 인식, 그리하여 그들이 마침내 만들어낼 우리의 미래가 더더욱 두렵다.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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