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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ABR’ 그만하고 상속받지 / 정영무

등록 2008-07-28 21:35

정영무  논설위원
정영무 논설위원
아침햇발
경제가 3% 넘게 성장했는데도 일자리는 3만개나 줄었다. 성장을 하면 자연스럽게 일자리도 늘어나야 한다. 그런데 성장이 고용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도식이 더이상 맞지 않는다는 게 드러난 것이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에 처음 벌어진 일이다. 그때부터 정부는 물론 민간 경제연구소들도 뭔가 근본적인 대응전략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수출이 증가하면 투자와 고용이 늘고 소비도 늘어 성장과 함께 소득, 분배가 향상되는 큰 틀의 선순환이 이뤄졌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그러한 모델이 해체되고 경제 시스템간 연관고리가 약화됐다. 성장에 따른 일자리 창출 효과가 예전만 못한데다 노동유연화로 비정규직이 늘어 분배도 악화되기 시작했다. 경제성장만으로 자동적으로 고용이 늘어나지 않는 시대라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일자리를 늘려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리고 복지를 실현하는 형태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했다. 복지를 통한 성장의 선순환이다.

이명박 정부는 ‘잃어버린 10년’ ‘좌파 정권’이라며 전임 정부를 부정하고 있다. 노무현만 아니면 된다는 ‘에이비아르’(Anything But Roh)의 강박에 빠져 정책유산 상속을 거부하고 있다. 그렇지만 성장과 분배가 동행해야 한다는 참여정부의 정책기조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다른 나라들도 세계화와 기술혁신으로 일자리가 줄고 소득 격차가 벌어져 성장과 분배의 조화에 고심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도전과제들에 직면해 내놓은 해법은 선진국에 가면 상식 정도이지 진보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유럽 복지국가는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지출 비중이 우리나라의 세 배, 미국·일본은 두 배에 이른다. 참여정부 들어 복지 예산이 좀 늘었다고 분배주의 나아가 좌파라고 하는 건 색안경을 끼고 본 편견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0년 동안의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가리켜 ‘한국적 의미에서 진보적 곧, 약간 덜 친기업적, 약간 덜 친미적’이라고 했다. 소득 2만달러 나라에서 미흡하나마 상식을 따르려 했다는 뜻이다. 성장지상주의가 가져온 결과는 영세한 복지부문과, 그것과 동전의 뒷면을 이루는 비대한 자영업이다. 다른 나라는 복지·의료·교육 분야에 광범위한 일자리가 있는데, 한국은 그런 분야를 등한히하는 바람에 살길을 찾아서 몰려든 곳이 자영업이다. 이러한 기형적 구조를 바로잡지 않으면 성장동력마저 잃을 수 있다.

위원회 공화국이다, 말만 하는 정권이다 비판받았지만 참여정부는 열린 토론으로 형평과 효율의 조화를 꾀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았다. 세계화 시대에 좌우를 떠나 각국 정부 정책의 수렴 지점이다. 현 정부가 지역정책, 공기업정책에서 용빼는 재주나 있는 것처럼 하다가 전 정권의 유산을 상속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을 봐도 달리 도리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정책은 지난 대선에서 거의 쟁점화되지 못했으며 참여정부의 피로감이 표를 갈랐다. 그런 점에서 국민들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기대한 것은 ‘노선의 변화’보다는 ‘경영 수완’이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매끄럽게 국정운영을 해주길 바란 것이다. 지난 1월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대통령 당선인의 성공 요소로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정책’이 24.5%, ‘양극화 해소’가 21.0%로 앞섰고, ‘친기업적 정책’은 8.2%에 그쳤다.

선거에서 전 정권을 싸잡아 비판할 수 있지만 국정을 맡고도 무조건적으로 유산상속을 거부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감세와 규제완화는 그러잖아도 극심한 양극화의 압력에 무릎꿇는 꼴로 나중에 훨씬 큰 비용으로 청구될 게 뻔하다. 지금은 보이는 손(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정영무 논설위원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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