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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무지인가, 고집인가 / 김지석

등록 2008-07-31 20:00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 논설위원
아침햇발
출범 5개월을 넘긴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점수를 매기기조차 어렵다.

경제 분야에서는 모든 것을 외부 여건 탓으로 돌리면서도 종부세 완화 등 부자들을 위한 정책은 차근차근 추진하고 있다. 극소수 핵심 지지층은 무슨 일이 있어도 챙기겠다는 모습이다. 사회 분야에서는 정책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퇴행적이다. 복지·노동 부서는 파리를 날리고, 경찰·검찰 등 시국치안 부서의 역할은 갈수록 커진다. 교육 시장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돼 불황 속에서도 교육비 지출은 큰 폭으로 늘었다. 방송 장악 시도도 집요하다.

하지만 외교·안보정책의 실패에 비하면 국내 정책 잘못은 오히려 가볍다. 어느 정권에서도 이런 적은 없었다. 실패의 뿌리는 정책의 초점을 무작정 미국으로 급격히 이동시킨 데 있다. 한-미 동맹 복원이라는 그릇된 이데올로기가 미국산 쇠고기 파문을 낳았고, 결국 부시 대통령의 방한 연기와 중국의 한-미 동맹 견제로 이어졌다. 외교 자주성을 약화시킨 정부 태도는 독도 문제를 크게 악화시켰다. 대미 관계 집착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 대북 강경정책은 남북 관계를 10여년 전으로 되돌렸다. 아세안지역포럼 의장성명 삭제 파문은 그 부산물이다. 돌발적 성격이 강한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도 남북 관계가 나빠 잘 풀리지 않는다.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정책 기조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그 방향은 이제까지처럼 ‘바깥에서 안으로’가 아니라 ‘안에서 바깥으로’다. 곧, 초점을 한반도로 이동시켜야 한다. 출발점은 남북 관계다. 남북 관계를 다지지 않고서는 모든 외교·안보 정책이 제한될 수밖에 없음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남북 관계에 대한 전략과 방법론은 물론이고 효과적인 정책 추진을 위한 시스템도 지금 정부 안에는 없다. 하지만, 핵심은 이게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의 인식에 있다.

이 대통령은 얼마 전 금강산 사건 대책을 논의하는 국무회의에서 “금강산 관광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북한을 돕겠다는 선의로 가는 것인데…”라고 했다. 상생·협력을 내건 금강산 관광 사업을 북한 돕기 운동쯤으로 보는 일종의 ‘퍼주기론’이다. 이런 인식으로는 남북대화의 동력이 생기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또 6자 회담과 관련해 “북한의 전략은 핵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하려는 것”이라며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지금의 6자 회담은 2005년 9·19 공동성명에 근거해 진행된다. 성명 1항은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할 것…을 공약했다”고 돼 있다. 곧, 핵 포기 약속은 회담 지속의 전제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회담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다. 대통령의 인식이 이런데, 한국이 어떻게 주도적 구실을 할 수 있을까.

이 대통령은 몰라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냉전안보 세력을 의식해 고집을 부리는 걸까.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아세안지역포럼 의장성명 삭제 파문과 관련해 ‘실패한 외교라는 지적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10·4 선언에 기초한 남북대화’라는 표현을 선전자료로 계속 활용할 텐데, 이를 삭제한 게 무슨 잘못이냐는 항변이다. 그의 항변 내용은 시대착오적이긴 하지만 이 대통령의 인식과 다를 바가 없다. 모든 문제의 뒤에는 대통령이 있는 것이다.

방향을 잘못 잡은 외교·안보정책은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 잘 모르면 배워야 하고, 마음에 안 든다고 고집을 부려서도 안 된다. 지금 정신 차리지 않으면 더 큰 실패가 닥친다.


김지석 논설위원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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