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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객원논설위원칼럼] 좌파정권 언제 있었던가? / 김상종

등록 2008-08-04 21:48

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객원논설위원칼럼
얼마 전 한 대학교수가 주변 사람들에게 ‘가슴에 닿는 문구’가 있다며 ‘한국인이 세계 1위인 또다른 것들’이라는 제목의 세태 풍자 목록을 돌렸다. 그중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엄청난 사건이 터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몇 달만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쉽게 잊어버리는 나라, 웬만한 죄는 국경일 몇 번만 기다리면 다 사면되는 나라.’ 용두사미로 끝나가는 이건희 부자의 재판이나 재벌 총수와 정치인들의 광복절 특사 논란이 떠오르며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았다.

그러나 도저히 ‘가슴에 와 닿기 어려운’ 이야기가 더 많았다. ‘광우병은 구경하지도 못했으면서 제일 무서워하며 떠드는 나라, 전기가 잘 들어오는데도 세계에서 양초를 제일 많이 소비하는 나라, 자기 멋대로 뉴스를 만들어서 온국민에게 방영해도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 나라, 소위 종교계(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지도자라는 분들이 이념 투쟁에 맞물려 좌와 우로 나뉘어져 아귀다툼을 해도 너그럽게 봐주는 나라, 경찰을 거지보다도 더 우습게 보는 나라, 공산 국가도 아니면서 좌익이 판치는 나라, 우리를 때려잡겠다고 핵무기를 만드는 이웃에게 있는 것 몽땅 아낌없이 퍼주는 나라.’

이런 이야기를 누가 어떤 목적으로 작성해 유포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우스갯소리에서조차 이념 갈등을 부추기는 논리가 춤을 추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섬뜩했다. 보수 세력이 정권 쟁취를 위해 내세웠던 좌파정권 매도 논리는 일정 부분 성공했다. 앞으로도 지지세력 결집과 정권 유지에 상당한 효용성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정책 실패와 부패 문제는 이명박 정부로 하여금 여기에 더욱 집착하도록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에게 좌파정권이 있었나? ‘좌파’ ‘좌파’ 할 때마다 삼십 년 전 좌파 사회민주당의 영향력이 컸던 독일에서의 생활이 떠오르곤 한다. 80년대 초 유학 중 첫애를 낳았을 때, 불과 한 달에 몇 만원의 의료보험료 납부로 대학병원에서 출산과 산후 조리를 모두 해결했다. 퇴원 후에는 몇 달치 의료보험료에 해당하는 육아지원비까지 받았다. 이런 경제적 지원에 그치지 않고 노련한 간호사가 집으로 방문하여 수유 요령과 아기 목욕시키는 방법 등을 일일이 가르쳐 주는 돌봄 서비스도 받았다. 이런 독일의 복지제도는 초산의 외국인 학생 부부에게는 큰 감동이었다.

형편없이 낙후된 우리의 복지 현실에도 불구하고, ‘좌파 정권 탓’ 선동에 휘둘리는 국민을 보면 참으로 당혹스럽다. 아파트 원가공개에 반대하고, 부동산 투기를 방조하며, 이라크 침략전쟁에 파병하고, 국민적 저항에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고, 졸속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 등, 지극히 친미적이고 친재벌적 정권까지도 어떻게 좌파 정권이라고 할 수 있는지, 자연과학자의 짧은 지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지지율 10%대로 이미 깊은 불신의 늪에 빠진 이명박 정부가 공권력에 의지하여 국면 전환을 꾀하려는 판에 말기적 현상이라는 친인척 비리까지 터져 나왔다. 다급한 상황이다. 다시 좌파 탓 꼼수가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그럴수록 피해는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 자영업자, 중소기업에게 돌아간다. 지난 몇 개월의 실정으로 말미암아 이 정부의 본색과 보수 언론 및 그 지지 세력의 정체는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제 좌파 따위의 이념 공세의 허울도 벗겨져야 하겠다. 그래야 현 정권이 편애하는 2%에 끼지 못하는 계층들이 착시현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존과 권익을 대변하는 언론과 정치 행위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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