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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객원논설위원칼럼] 실종되는 ‘교육복지’ / 이태수

등록 2008-08-11 20:07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 교수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 교수
객원논설위원칼럼
일반인에게는 낯선 ‘교육복지 투자 우선지역 사업’이라는 것이 있다. 인간의 잠재력을 고양하고 사회적 적응을 도모해 전인격적 발달을 꾀한다는 교육적 목적이 단순히 수업시간의 학습 교육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는 없다는 인식의 결과로 2003년부터 시작된 사업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13개 광역시도에 걸쳐 60개 도시빈민 지역, 164개 행정동이 사업 지역으로 지정돼 있고, 모두 학교 517곳이 사업 대상 학교로 포함돼 있는 굵직한 사업이다. 올해는 이명박 정부에서 예산이 삭감됐지만 지난해에만도 중앙정부가 374억원을 쏟아 부었던 사업이다.

이 사업에 대해, 지난달 교육과학기술부가 일선 교육청에 공문 하나를 내려보냈다. 사업명에서 ‘복지’라는 단어를 빼고 단순히 ‘교육투자 우선지역 사업’으로 할 것, 사업의 핵심도 문화나 심리정서, 보건 및 복지 관련 프로그램보다는 학업성취도 향상을 꾀하는 프로그램 중심으로 할 것, 그리고 사업 성과에 대한 측정도 학력 증진 효과가 얼마나 있느냐로 할 것 등이 핵심인 공문이었다.

현 정부가 수월성 교육을 전면에 내세우며 ‘만인에 대한 만인의 경쟁’ 상태로 교육 방향을 설정했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졌다. 경쟁만이 오로지 인간 능력 개발을 극대화하는 최선의 방법이고 가능성 있는 새싹들에게는 ‘평등’이나 ‘공교육’이란 이름으로 묶어놓기보단 무한한 잠재력을 기를 수 있도록 자율학교, 특목고 그 어떤 것으로든 미래의 출구를 열어 주도록 하자는 것이 정부의 교육철학이다.

그러나 교육 문제가 애초에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교과서 지식을 그저 단순히 입력시키기만 하는 것이었다면 얼마나 간단하겠는가? 또한 교육의 성과가 오로지 학업 성적 하나로 수렴되고, 그것이 인간이 지닌 무한하고 다양한 능력에 대한 유일한 측정 도구라면 이 또한 얼마나 간편한 일이겠는가? 그렇게만 된다면 그 학업 성적으로 만들어진 학벌이 출세의 배경이 되고, 좋은 학벌을 가진 자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사회 안에 바벨탑을 만드는 것은 얼마나 공정한 일이겠는가?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기에, 그럴 수 없기에 일찍이 ‘교육복지’라는 새 개념이 요구됐는지 모른다. 학생을 학교로 오지 못하게 만드는, 학생들이 학업에 열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개인적·가정적·지역적·사회적 조건들에 대한 포괄적 접근과 그에 대한 해소 없이 학업성과 운운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불공정한 것인가를 깨달아야 교육복지에 접근할 수 있다. 교육 현장의 문제는 더 이상 학교와 교사만의 문제일 수 없는 상태로 고질화됐기에, 교육복지라는 정책 아래 사회복지사나 지역사회 활동가들이 학생과 교사의 조력자로 그 전문성을 발휘하게 됐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내려보낸 공문의 의미가, 그간 교육복지란 개념에 담아 왔던 이런 자각과 성과들을 뒤집겠다는 것이 아니었으면 한다. 더 나아가 현 정부가 교육 분야에서까지 마지막 지켜야 할 보루를 팽개친다는 의미가 아니었으면 한다.

핑크 플로이드의 저항적 노래를 앨런 파커 감독이 <벽>(The Wall)이란 영화로 탄생시켰다. 거기서 학교란 학생들을 몰개성의 소시지로 만들어 일렬로 뱉어내는 공장으로 묘사된다. 핀란드는 경쟁이 아니라 창의성을 존중하는 자유롭고 개성 강한 학교 체계를 갖고도 국제적으로 평가되는 경쟁력에서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교육복지 정책이 변질되는 것을 보면서, 현 정부가 아무리 아니라 하여도 결과적으로 우리 학교가 불행히도 ‘핑크 플로이드의 학교’로 갈 것 같은 불길함을 떨칠 수 없다.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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