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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성립될 수 없는 ‘건국 60년’ / 한시준

등록 2008-08-11 20:09

한시준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
한시준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
기고
이명박 정부는 올해를 ‘건국 60년’이라며 각종 기념사업을 추진하면서, 8·15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어 행사를 하고자 했다. 이에 대해 올해가 ‘건국 60년’이 아니라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또 강력한 반대운동이 일어나자, ‘광복 63년 및 건국 60년’이란 명칭을 쓴다고 한다. 어떻게든 ‘건국 60년’을 기념하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되었다는 ‘건국 60년’은 역사적·법률적은 물론이고, 상식적으로도 성립되지 않는 말이다.

우리 역사에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한 정부가 수립된 것은 두 번이었다. 1919년 3월1일 독립을 선언한 후 4월11일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고, 일제로부터 독립한 뒤 1948년 8월15일 또다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였다. 1948년 수립된 것은 새로 ‘건국’한 것이 아니라, 임시정부를 계승·재건한 것이다. 제헌국회 속기록에 임시정부를 계승·재건하여 수립했다는 사실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또 제헌헌법 전문에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정부 수립 근거를 밝혀 놓았다. 대한민국은 1919년에 비롯되었고, 89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임시정부의 연호를 대한민국 정부에서 그대로 사용하였다는 역사적 사실 하나만 들어도, ‘건국 60년’은 성립될 수 없다. 1948년 9월1일 정부가 <관보> 제1호를 발행하면서, ‘대한민국 30년 9월1일’이라고 하였다. 임시정부가 사용한 ‘대한민국’이란 연호를 그대로 쓴 것이다. 연호는 국가가 바뀌는 것은 물론이고 황제만 바뀌어도 달리 쓴다. 대한제국에서도 고종이 ‘광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지만, 순종이 즉위해서는 ‘융희’라고 하였다.

또 이 말은 법률적으로도 성립될 수 없다. 제헌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를 계승하여 재건한 것”이라 하였고, 1987년 개정된 헌법도 “우리 대한 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고 쓰고 있다. 헌법은 대한민국이 임시정부를 계승하여 재건한 것임과 그 법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건국 60년’은 헌법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일반적 상식으로 보아도 성립될 수 없다. 고려대는 2005년에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치렀다. 1905년 이용익이 설립한 보성전문학교부터 연원을 따지기 때문이다. 보성전문학교는 설립 이후 천도교 손병희를 거쳐, 1932년 김성수가 인수하였다. 학교 이름도 보성법률상업학교로 바뀌었다가, 1946년 8월15일 미군정청 문교부로부터 고려대로 설립인가를 받았다. 설립자도 다르고 교명도 달랐지만, 고려대는 그 연원을 보성전문학교에 두고 있다. 연세대와 이화여대 등도 마찬가지다.

이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도 마찬가지다. 조선과 동아는 각각 1920년 3월5일과 4월1일에 창간되었다. 이후 두 신문은 조선총독부로부터 여러 차례 정간을 당했고, 1940년 8월에는 폐간을 당하여 5년 동안 신문을 발행하지 못했다. 두 신문은 해방 후 다시 발행되었다. 조선은 1945년 11월23일부터, 동아는 같은 해 12월1일부터 발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두 신문은 해방 후 복간된 날에 자신의 연원을 두지 않는다.

‘건국 60년’은 역사적·법률적으로는 물론, 일반 상식으로 보아도 성립되지 않는다. 더구나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이 주인이라고 하는 나라에서,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건국 60년’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기념하는 것이다.


한시준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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