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객원논설위원칼럼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 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킨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위당 정인보 선생이 가사를 쓰고 ‘보리밭’ 작곡자 윤용하님이 곡을 붙인 광복절 노래다.
1949년에 제정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1945년 8월15일과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15일을 동시에 경축하자는 의미에서 8월15일을 광복절로 이름 지었다.
올해 광복절은 혼란스럽다. 정부가 주도하는 각종 행사에서 ‘해방 63돌’은 보이지 않고 ‘건국 60년’이 대신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정갑윤, 정두언 등 한나라당 의원 13명이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내용인즉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것이다.
1948년 7월17일에 제정된 헌법 전문은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이라 하고 있다. 1987년 10월29일에 개정된 헌법 전문도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이라 하고 있다.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것으로, 항일 독립운동의 의미를 축소하고 친일 부역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행위다. 대한민국은 5천년 역사와 단절된 신생독립국으로 전락하고, ‘실효적 지배’ 이외에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할 역사적 근거도 사라진다. 기회 있을 때마다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주장해 온 일본으로서는 참으로 고마운 노릇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엊그제 광복절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특별사면 대상에는 배임, 횡령 등 반기업적 범죄행위를 저지른 재벌총수와, 조·중·동 언론사 경영진, 정치인이 거의 빠짐없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노동자는 찾아볼 수 없다. 물론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 지지를 선언한 한국노총 간부 13명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한 명도 없다.
과거 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 노동자들은, 비록 립서비스 차원이나마, 생산의 주역이고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며, 산업역군이자 수출역군이라고 일렀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노동자들은, 국민 대통합이나 경제 살리기와 무관한, 걸림돌 정도로 치부되고 있다. 이처럼 노동자들을 배제하면서 국민 대통합과 경제 살리기가 가능할까? 아무래도 아닐 것 같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오늘은,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단식농성을 시작한 지 65일째 되는 날이다. 정상 체중에서 20% 이상 체중이 줄어들어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고 한다. 엊그제 김소연 분회장이 쓴 편지는 “오늘 이 시각부터 저는 효소와 소금을 끊습니다. 물만으로 얼마나 더 버틸지 알 수 없지만, 기륭전자가 갈 때까지 가겠습니다. 제가 쓰러져도 강제 병원후송도 응급조치도 거부합니다. 건강을 염려하는 동지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현재 제가 더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비가 오고 천둥 번개가 치던 어젯밤 밤새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결단했습니다. …결국, 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우리 비정규직은 이렇게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동지들의 가슴을 아프게 해서 죄송합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정작 주무 부처장인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단 한 번도 현장을 방문하지 않았다.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는 얘기도 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2008년 ‘건국(?) 60주년’의 대한민국 모습이다. 2008년 대한민국은 야만이 판치고 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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