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논설위원
유레카
인사에서 ‘낙하산’이란 말이 처음 쓰인 건 1961년 5·16 쿠데타 이후다. 쿠데타를 주도한 군사정권 실세들의 친인척이 정부직에 기용되는 일이 많았다. 군부 고위층의 ‘빽’으로 요직을 차고 들어오는 걸, 공수부대 낙하산에 빗대 ‘낙하산 인사’라고 불렀다.
미국에도 이와 비슷한 의미로 ‘스포일스 시스템’(spoils system)이란 게 있다. 1832년 뉴욕주 상원의원이었던 윌리엄 마시의 “전리품은 승리자의 것”(To the Victor Belongs the Spoils)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마시는 “승리를 위해 싸울 때는 승리의 과실을 향유할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하다. 만약 패한다면, (패한 쪽은) 공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 무렵부터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연방정부의 주요 공직 인사들이 모조리 물갈이됐다.
이런 정치적 분위기가 바뀐 건 20세기 들어 정부의 규모와 역할이 커지면서부터다. 전문 기술이나 지식을 요하는 자리들이 많아지면서 과거처럼 이념적 충성도만 갖고 충원하는 시스템으론 방대한 정부를 운영하기 힘들었다. 또 스포일스 시스템으로 충원한 인사들이 자기들끼리 결탁하면서 부정부패의 온상이 됐다. 무능력과 부패, 이 두 가지를 극복하고 행정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20세기 초반부터 ‘메리트 시스템’(자격임용제) 도입이 확대됐다.
5·16 직후 쓰였던 ‘낙하산 인사’란 말이 우리 사회에 다시 회자하기 시작한 건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때부터다. 여당 후보로 당선됐지만 야당 출신이었던 김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그룹인 민주계 인사들을 대거 정부기관에 기용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낙하산 인사’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도 이전 정부들은 비판을 받으면 잠시 숨을 고르면서 여론을 수렴하는 척이라도 했다. 이명박 정부는 그런 시늉조차 하질 않는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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