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명신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공동대표
시론
서울 전체 유권자의 6% 지지를 얻어 차점자와 불과 2만여 표 차이로 교육감에 재임된 공정택 교육감은 ‘경쟁은 이를수록 좋다’며 국제중 설립을 밀어붙이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국제중 설립 목적을 ‘다양한 교육적인 수요를 만족시키고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바꿔 말하면 국제중은 영어 몰입교육과 학원 자율화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다. 또 제한적이나마 중학교 입시를 부활하여 학교를 서열화하고, 사교육비를 늘리고 평준화 정책을 깰 우려가 크다.
1968년 초등학교 6학년이던 나는 당시 권오병 문교부 장관이 중학교 입시를 폐지한다는 뉴스를 늦은 밤까지 과외를 받다가 들었다. 그 당시 서울지역 초등학생의 삶이라는 것이 일류 중학교를 가기 위해 밤마다 과외를 마친 뒤엔 체력장 연습, 소풍 가는 날 아침에도 매일고사를 치러야 하는, 입시에 찌든 인생이었다. 뉴스를 듣는 순간 나를 비롯해 과외받던 애들은 모두 밖으로 뛰어나가 환호성을 질렀다. “이젠 우리도 살았다!”
공정택 교육감은 40년 전 그 살인적인 중학교 입시를 현실 세계로 다시 불러들이고 있다. 혹자는 ‘서울시내 360여개 중학교 중 국제중이 두 개 생긴다고 해서 귀족교육, 평준화 해체 운운하는 것은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고 묻겠지만, 서울 한복판에 국제중이 생기면 초등학생들까지 문제풀이식 교육, 소모적 입시 경쟁에 뛰어들게 된다. 현재 국제중은 전국 두 곳에서 특성화 중학교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데, 국어·역사 과목 외 전 과목을 미국 교육과정에 따라 영어로 수업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국제중을 명문대 예비 관문으로 인식하고 점차 과열 현상을 보여 지난해 청심 국제중은 17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초등생 부모 사이에서 국제중은 ‘광 스피드’로 화젯거리가 되고 있으며, 학원들도 잇따라 학부모 간담회를 여는 등 포화상태 대입시장의 활로를 뚫는 영업 확장의 계기로 여겨 들썩이기 시작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국제중이 사교육비 폭증을 부른다는 세간의 비판을 의식해서 학교장 추천 후 면접, 추첨하겠다고 밝혔지만 말이 좋아 추첨이지 1단계 추천 과정에서 중요한 경시대회 입상은 이미 정상적인 초등교육 과정만을 이수해서는 응시조차 불가능하다. 국제중으로서는 전국 초등생 일제고사를 통해 응시생의 전국 서열도 알 수 있고 교육기관 정보 공개도 앞두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고교 등급제처럼 초등학교 등급제도 할 수 있다. 곳곳이 지뢰밭인 것이다. 결국 입시 준비는 학원에 의존하고 초등학교는 추천장을 써주는 것이 고작이어서 잘못하다간 대학 입시에 무기력한 고등학교 현실을 초등학교에서 판박이할 우려가 높은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관내 외국어고의 파행도 관리 못하면서 어이없는 궤변만 늘어놓고 있다.
공 교육감은 선거기간 내내 글로벌 인재를 강조했다. 국제중을 세워 어린 학생들을 야멸차게 경쟁시키는 것이 글로벌 인재 육성인가? 결국 국제중은 상위 5%를 위한 교육정책으로 전락하고 입시목적고로 변한 특목고처럼 학교는 일단 설립되면 부작용이 심해도 여간해서는 폐교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임에 비춰볼 때 서울뿐 아니라 다른 지자체들도 유권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국제중 설립 경쟁에 뛰어들 것이다. 국제중 설립은 시도교육청과 교육부가 협의 단계를 거치게 되어 있다. 하지만 4·15 학교 자율화 조처로 시·도 교육청에 많은 권한을 넘긴 이명박 정부는 학교 다양화의 호기라며 수수방관하고 있다. 강남 소아정신과엔 소아정신질환자가 늘고 있다. 정녕 초등생까지 입시지옥에 몰아넣고 나서야 이명박 정부 교육부는 정신을 차리려는가?
김정명신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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