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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녹색성장’이라는 말장난 / 김종철

등록 2008-08-22 19:40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삶의창
스웨덴의 동물원에서는 이국종 야생동물을 거의 볼 수 없다고 한다. 동물원이라고 하면 으레 먼 나라에서 잡아온 야생동물을 전시하는 곳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것은 좀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일지 모른다. 물론 스웨덴이라고 해서 옛날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동물원의 이런 방침은 온갖 매체와 교통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에 진기한 야생종 동물의 전시라는 게 이제는 별 실효가 없다는 판단,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민들 사이에 확산되어온 동물학대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인 듯하다. 야생동물을 그가 태어나서 길들여진 곳과 판이한 기후, 풍토에 억류한다는 것은 그 자체 견디기 어려운 고문일 것임이 분명하다.

최근에 나는 ‘복지국가’ 스웨덴에 대한 평소의 의문을 해소할 목적으로 관련 서적을 조금 보았다. 내 의문은, 이른바 스웨덴 모델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지속 가능한 것이며, 또 세계 전역으로 일반화할 수 있는 모델인가 하는 것이었다. 몇 권의 책을 읽고서도 그 의문은 속시원하게 해소된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책을 보면서 나는 스웨덴이 ‘좀더 인간적인 사회’를 끊임없이 지향하는 사회라는 것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고, 그 때문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위의 동물원 이야기는 어쩌면 가벼운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엿볼 수 있는 이 사회의 분위기는 가축들에 대한 태도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축산은 대부분 공장형 축산으로 바뀐 지 오래되었고, 이런 산업적 사육방식에 의한 동물 학대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잔혹한 것이 되었음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스웨덴에서는 소들은 아직도 방목(放牧)이 원칙이다. 또, 설령 공장식 양계장이나 돈사라 하더라도 스웨덴의 돼지나 닭들은 가령 미국의 돼지, 닭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인도적인’ 대우를 받고 산다.

현재 스웨덴은 기왕의 복지국가를 넘어서 ‘녹색 복지국가’를 목표로 삼고 있다. 1967년에 세계 최초로 출범했던 스웨덴 환경부는 2005년에 ‘지속가능발전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개명은 오늘의 환경위기의 근본 원인이 자원과 에너지의 지속 불가능한 사용방식에 있다는 좀더 깊어진 성찰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020년까지 화석연료 의존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을 목표로 스웨덴은 지금 다양한 재생 에너지 개발에 매우 적극적이다. 그러면서도 북부 4대 강을 개발하여 수력발전을 하자는 일부 여론에 대해서, “유럽 전체의 자연적, 문화적 유산이기 때문에” 강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놀라운 것은 지난 20년 동안 스웨덴이 일정한 수준의 경제성장을 계속해 왔음에도 그동안 에너지 소비가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업의 자세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진지하다.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 ‘볼보’의 부사장이 “자동차 때문에 우리의 도시들이 파괴되고 있다”며 사실상 승용차 생산 감축을 제안하고 있는 형편이다.

물론 스웨덴이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곳이 아니다. 사실, 엄혹한 글로벌 경제 체제 속에서 스웨덴의 ‘녹색 복지국가’ 실험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아직은 누구도 장담 못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생명과 자연을 소중히해야 한다는 건강한 상식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성숙한 선진사회의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언필칭 ‘실용주의’를 표방하면서 결국은 땅과 자연을 파괴하고 민중을 억압하는 것 외에 아무런 능력도 철학도 없다는 것을 드러낸 정부가 어느날 느닷없이 들고 나온 ‘녹색 성장’이라는 구호 따위로 실현될 수 있는 ‘선진사회’가 있을까. 어림도 없는 일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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