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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긴급조치시대로의 사법적 회귀, 대응은 사법개혁 / 박경신

등록 2008-08-24 22:01수정 2008-08-25 10:01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
기고
지난주 광고중단 운동 관련자들이 구속되면서 대한민국은 인터넷에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만으로도 구속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대한민국 변호사, 판사, 검사, 법학교수들은 이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을 입에 올리지 말라.

말은 듣는 사람의 반응이 없으면 아무런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 듣고 반응하는 사람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효과를 내는 행동에 비해 말은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는 원리가 바로 표현의 자유의 몸통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은 표현의 자유 보호기준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원칙은 미국 연방대법원이 1차 세계대전 때 징집 불복을 선동하는 전단을 배포한 것에 대해 실제로 대규모 징집거부 사태가 발생할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어야만 선동행위 처벌이 헌법적으로 가능하다고 판시한 데서 온 것이다. 이 원칙은 특정 행위가 타당하다는 ‘주장’과 그 행위의 ‘교사’를 구별하고 ‘즉각적인 위법행위의 교사’에 대한 처벌만이 헌법상 가능하다는 원칙으로 발전했다. (원문 ‘incitement는 영한사전에는 선동으로 번역되지만 관련 판례들을 보면 ‘교사’가 맞다.)

광고주에게 광고행위를 근거로 불매의사를 밝히는 전화를 거는 것이 위법한 ‘2차 불매운동’에 해당한다는 검찰의 주장은 이미 날조된 외국 법리에 근거한 것임이 판명되었다. 그러자 검찰은 한발 물러나 2차 불매라서 위법한 것이 아니고 항의전화를 조직적이고 집중적으로 하여 업무가 불가능하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이번에 구속된 누리꾼 2명은 광고주들에게 항의전화를 한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광고주들의 리스트를 다음 카페나 구글에 게재하고 누리꾼들에게 항의전화를 독려하는 글을 올린 것으로 구속되었다. 구속자들은 특정인들에게 돈이나 지위를 이용하여 항의전화를 하도록 유인하지도 않았다. ‘광고주들에게 광고를 철회하지 않으면 그 회사 제품을 구매하지 않겠다고 전화로 통보하는 행위’의 타당성을 ‘주장’하였을 뿐이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 원칙 아래서는 이들의 처벌은 불가하다.

더욱이 1명은 광고주 목록을 구글에 올린 것만으로 구속되었다. 광고주 목록은 광고가 실린 일간신문들에 공개된 것인데 이것을 인터넷에 다시 게재한 것이 범죄라면 바로 그 광고를 몇십 만부씩 찍어 광고주들의 이름과 연락처를 전국민에게 통보하는 일간신문 스스로도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 아닌가?

견해의 표명만으로도 감옥에 갈 수 있다는 면에서 우리는 유신 시절의 긴급조치 시대로 다시 돌아간 것과 같다. 2008년의 긴급조치는 독재정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검찰과 법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단호히 사법개혁이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검찰과 법원을 구성하는 법률가들의 배경을 다양하게 만들고 이들의 특권의식을 깨뜨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법률가 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 현재 변호사 정원제 아래서는 아무리 사회적으로 소외되었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번 특권의식의 세례를 받고 나오면 중요한 시점에서는 법과 원칙을 포기함은 물론 누구의 편도 아닌 자신들의 편에만 서게 된다. 지금 검찰과 법원이 보이는 판결 및 수사행태도 자신들이 특권층에 속해 있고 이명박 정권이 촛불시위가 보여준 대중들의 ‘공포스러운 힘’으로부터 특권층을 계속 보호해줄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더욱 열심히 해야 할 일은 자신과 같은 모임이 10개 이상 나올 수 있을 만큼 판검사 후보자(즉 변호사)의 수가 늘어나도록 사법개혁에 앞장서는 일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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