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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외줄에서 손 놓기 / 여현호

등록 2008-08-28 23:02

여현호 논설위원
여현호 논설위원
아침햇발
지지기반을 챙기는 건 정치인의 속성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 그는 누구와 함께할지 굳이 숨기지 않는 것 같다.

그는 ‘법과 원칙’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보수의 구호다. 사회통합이나 소통과는 다른 가치다. 현실의 정책과 집행에서 그 차이는 달과 화성만큼이나 크다. 그는 북한이 남쪽 사회를 이념적으로 분열시키려 한다고도 말했다. 오래된 보수 쪽 대북관이다. 그렇게 보기 시작하면 자신에게 반대하는 이들은 ‘북한의 대남전술에 놀아나는 빨갱이’로 비친다. 극단으로 치달으면 진보는 물론 중도까지 내치게 된다.

그제 범불교도대회를 전후해선 불심을 달래는 더 이상의 추가 조처는 없을 것이라는 말이 청와대에서 나왔다. 대통령 직접 사과나 어청수 경찰청장 경질 등 불교계의 요구를 더는 들어주긴 어렵다는 것이다. 뭘 더 하라는 거냐고 내뱉는 듯하다. 마음을 다친 불교계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는 자세는 아니다. 대통령 자신이 서울시 봉헌 등 종교 편향 발언을 서슴지 않은 교회 장로라는 사실이 새삼 떠오르게 된다. 이래서는 다른 종교와 척지는 일을 피하기 어렵다.

<한국방송> 사장을 놓고 언론장악이라는 측면 말고 다른 시각에서 보는 이들도 있다. 신임 이병순 사장은 사실상 대구·경북(TK) 출신이다. 한국방송 사태에서 핵심 구실을 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도 티케이다. 정권 초기 검찰과 국정원 인사 때도 티케이 약진이나 티케이의 장악 시도라는 말들이 많았다. 권력기관의 수장은 지금 대부분 영남 출신이다. 이명박 정부는 인사 때마다 지역 안배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였다. 만족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화를 내게 된다.

이 대통령이 정치인으로서 보수·교회·영남을 지지기반으로 삼는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 촛불 민심에 위축된 그로선 남은 기간 국정을 이끌기 위해서라도 기존 지지세력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을 게다. 대통령 주변에서도 그렇게 30% 안팎의 지지만 유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벼랑 끝에서 자신을 살려줄 외줄인 양 보수·교회·영남에만 매달린다면 문제가 다르다. 이념·종교·지역은 예민한 문제다. 신념과 정서에 관한 것인 만큼 갈등과 충돌로 번지기 쉽다. 다른 쪽을 배척하고 외면하기 시작하면 갈수록 가속도가 붙는다. 그런 ‘뺄셈의 정치’는 더한 과격과 충돌을 낳는다. 우리 역사가 그런 경험을 적잖이 겪었고, 옛 유고 등 세계의 여러 분쟁지역이 그런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 정치인으로선 득실을 따질 수도 있겠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 그런 갈등을 스스로 빚거나 방치한다면 국민을 분열시킨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정치공학으론 다른 설명도 있을 수 있다. 집토끼를 챙긴 뒤 산토끼, 곧 지지기반 확대를 노린다는 논리다. 지금 이명박 정부 처지에선 경기를 회복시켜야 그런 게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주변의 경제환경이 너무 어렵고, 경제를 이끌 조타수는 신뢰와 힘을 잃었다. 오히려 지금처럼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한계상황에 내몰리는 등의 일이 계속되면 이념·종교·지역보다 더 위험한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이명박 정부는 대기업 편향 따위의 의심을 받고 있다.

“가지를 잡고 나무를 오르는 일은 어렵지 않으나, 벼랑에서 손을 놓아야 비로소 장부”라고 했다. 송나라 때 선시의 한 구절로, 백범 김구 선생이 평생의 화두로 삼은 말이다. “백척간두에서 한 발을 던져야 세상의 새로운 모습이 보인다”라는 선시도 있다. 다른 종교의 지혜에서도 배울 바는 있지 않겠는가.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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