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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객원논설위원칼럼] 모든 노동자에게 단체협약을! / 김유선

등록 2008-09-03 21:33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
객원논설위원칼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노사관계 분야도, 미국을 스탠더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노동정책을 논의할 때도 우리 현실보다는 미국은 어떠냐가 주된 관심사다.

한국과 미국은 낮은 조직률과 협약적용률, 기업별 교섭과 적대적 노사관계 등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러나 미국은 대기업 비중이 높고, 한국은 중소 영세업체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미국은 제조업 노동자의 59%가 500인 이상 대기업에서 일하고, 24%만 100인 미만 중소 영세업체에서 일한다. 한국은 16%만 대기업에서 일하고, 66%가 중소 영세업체에서 일한다. 대기업 비중이 높은 미국에서는 기업별 교섭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처럼 전체 노동자의 84%가 중소 영세업체 비정규직인 나라에서 기업별 교섭은, 대다수 노동자를 단체협약 적용 대상에서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노동기구, 세계은행은 ‘노조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이 높을수록, 전 산업 또는 개별 산업 수준에서 단체교섭이 이루어지고 조정이 원활할수록, 임금 불평등이 낮다’는 결론을 한목소리로 내놓고 있다. 한국은 노조 조직률이 오이시디 30개국 중 29위고, 단체협약 적용률은 30위다. 단체교섭은 기업별로 분권화되고 조정이 원활하지 않다. 임금 불평등이 심하고 저임금계층이 많은 것은, 비정규직 남용 등 노동시장 요인 이외에 노사관계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대다수 유럽 국가들에선 단체협약 적용률이 70~90%에 이른다. 산업별 교섭을 통해 노사 쌍방이 체결한 단체협약을 효력확장 제도를 통해 동종 산업 미조직 노동자에게 확대 적용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노조 조직률이 25%지만 단체협약 적용률은 68%다. 산업별 단체협약이 체결되면 기업은 사용자단체의 회원사로서 단체협약을 지킬 의무가 생긴다. 해당 기업에 조합원이 없어도 기업 내 모든 노동자에게 단체협약이 적용된다. 또 노조 조직률이 10%가 안 되는 프랑스의 단체협약 적용률은 90%나 된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의문이 엊그제 민주노총이 주최한 국제세미나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 노총 간부들을 만나면서 풀렸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에서는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단체협약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비조합원에게 단체협약 효력을 확장하는 별도의 요건과 절차도 필요 없다.

우리 헌법 제33조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갖는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기업별 교섭이 지배적인 현실에서 노동기본권은 대기업 정규직 조합원에 한정된 채, 중소 영세업체 비정규직은 노동인권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 지난 50여년 동안 한국에서는 노조 조직률이 20%를 넘어선 적이 없다. 노조가 직접 실업보험을 관리 운영하는 선진국도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를 제외하면 요즈음 50%를 넘는 나라가 없다. 현행 노사관계 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앞으로도 상당 기간 조직률은 10%대의 벽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중소 영세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산업별 단체교섭을 촉진하고 단체협약 효력을 확장하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 우리는 아예 산업별 단체협약 효력확장 제도가 없고, 노동정책은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기업별 노사관계를 전제로 운용되고 있다. 정부는 기존의 노동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동시에, 모든 노동자가 단체협약을 적용받을 수 있게 산업별 교섭을 촉진하고 단체협약 효력확장 제도를 신설해야 할 것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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