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언어예절] 퍼주기 / 최인호

등록 2008-09-04 18:12

언어예절
“함지에 보리밥을 퍼 담고,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리며, 채독에서 쌀을 한 보시기 퍼 동냥을 준다”처럼 활용하여 ‘퍼-’로 쓰는 말에 ‘푸다’가 있다. 이에 ‘주다’를 합치고 뒷가지 ‘기’를 붙여 ‘퍼주기’를 만들어 쓴다.

몇 해 이 말의 폭발력은 대단했다. 2000년대 초부터 반북정서를 대변해, 햇볕·포용, 평화·번영 등 정부의 대북정책을 뭉뚱그려 비판하는 용어로 쓰였다. 말 자체가 주는 단순성과 적확성으로 정부의 대북정책을 꼬집고 무력화하는 데 큰 구실을 했다.

이 말을 부려쓰는 쪽에서는 애초 헤아림 같은 것은 버렸다. 인도적 지원과 경제협력 원조를 구별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싸잡은 것이다. 남북 관계를 깊이 생각하고 배려하는 이의 ‘말씀’은 아니란 말이다.

이후 ‘퍼주기’의 쓰임은 선거, 외교·통상, 단체교섭 등으로 그 영역이 넓어진다. 선심 공약, 선심 정책, 조공 외교, 선물 외교 …에서 ‘퍼주기’가 그 앞말을 대신했다. 이는 고정된 말뜻으로 굳어지지 않고 살아 있는 말로서 여러 언어 환경에서 적응한다는 뜻이겠다.

나눔·베풂·선심·보시보다 떳떳하고 좋은 게 뭐가 있겠는가.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 본디 대가를 받느냐 받지 않느냐와는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상호주의’나 ‘주고받기’가 상대되는 말이 되겠지만, 최근 들어서는 ‘퍼주기’도 ‘주고받기’도 듣기가 어려워졌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