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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진실과 정의’는 멈출 수 없다 / 서중석

등록 2008-09-08 21:22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한국사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한국사
시론
권력이 공영방송을 장악하려고 총공세를 펴고 있는 가운데 검찰과 경찰, 국정원이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일제통치를 미화하고 독립운동을 얕보면서 독재를 합리화하고 친일파·분단세력을 옹호하는 역사관이 공공연히 활개를 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제의 강제동원, 반민족적 친일행위, 정부 수립과 전쟁 전후의 집단학살, 독재정권이 저지른 비리와 의혹사건의 진상규명 활동을 해온 과거사위원회들이 위기의식에 싸여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는 진보와 보수를 따질 것 없이 모두에게 바람직한 것으로, 결코 과거로 되돌려놓을 수 없는 보편적 가치이다. 그런데 새 정권이 들어선 지 불과 반년 만에 그런 보편적 가치가 도전에 직면해 있고, 진실이 살아 숨쉬는 정의로운 사회 만들기도 전망이 밝지 않다.

진실이 살아 숨쉬는 정의로운 사회는 과거사에 대한 진상규명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이 때문에 1960년 4월혁명 직후에도 이승만 정권의 반민주 행위를 징치하기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과거사 진상규명 운동이 전개되었다. 과거사 진상규명 운동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부터 활발히 펼쳐졌지만, 수구냉전세력의 방해로 특별법이 제정되어 위원회에서 진상규명 활동이 전개된 것은 21세기에 들어와서였다.

민주화운동과 시민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과거사 진상규명 운동과 여러 과거사위원회 활동으로 수많은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근현대의 우리 역사는 새로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가 되었다. 일제와 친일파, 극우반공세력에 의해 왜곡되고 훼손되었던 여러 부분이 복원되었고, 비어 있던 많은 공백이 채워지게 되었다. 화해와 화합을 위해서 특별법에 가해자 처단 규정이 들어가지 않은 것에 비판이 많지만, 과거사 진상규명으로 근현대사 교육은 새로운 차원에 들어섰다.

과거사위원회 활동은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금년에 제주4·3 60주년 행사가 총리 참석하에 치러졌을 때, 민간 쪽이건 공직자건 한결같이 위원회에서 통과시킨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를 흠집내려 하거나 위원회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천명했고, 총선에서는 과거사 활동에 적극적인 정당 후보 3명을 전원 당선시켰다. 법원의 인혁당재건위원회 사건 재심 무죄판결이나 ‘진실과 화해위원회’의 조봉암 사건 결정에 대해서는 수구적 언론조차 환영했고 지지하는 사설을 썼다.

21세기에는 한국의 보수세력도 이승만·박정희 시기의 구태를 벗어나 체질을 바꾸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의 후쿠다 총리와 만나기 전날 “일본에 만날 사과하라 요구하지 않겠다”고 말해 실용주의와는 동떨어지게 스스로를 무장해제했다가 후쿠다를 만난 지 한 달도 안 돼 독도 문제로 일본 정부로부터 뒤통수를 맞았지만, 서독의 콜 총리가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이어받아 독일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것은 실용주의의 좋은 본보기다. 제대로 된 실용주의자라면 일제통치와 독재를 미화하는 퇴영적인 극단적 역사관과 선을 긋고, 과거사 진상규명 운동에 전향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과거사 진상규명 운동은 투쟁을 통해 큰 성과를 얻어냈다. 이제는 과거사위원회에 대한 탄압이나 고사작전에 대한 대응도 중요하지만, 지금까지의 성과를 전달해 국민한테 파고드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려면 진상규명 성과를 교과서에 반영시키는 활동 못잖게,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화려한 휴가>와 같은 대중적 문화활동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런 활동과 관련해 오늘 창립모임을 여는 ‘진실과 정의 포럼’에 많은 기대를 해본다.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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