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마른눈물 삼키며 “이젠 일 없습네다”

등록 2005-05-01 22:05수정 2005-05-01 22:05

 용천소학교 2, 3, 4학년 20여명으로 구성된 음악소조 아이들이 용천 사고 때 목숨을 잃은 선생님을 기리는 노래 ‘우리 선생님’을 부르던 중 한 학생이 울음을 터트리고 있다.
용천소학교 2, 3, 4학년 20여명으로 구성된 음악소조 아이들이 용천 사고 때 목숨을 잃은 선생님을 기리는 노래 ‘우리 선생님’을 부르던 중 한 학생이 울음을 터트리고 있다.
용천폭발 그후 1년…

4월29일은 ‘용천역 폭발 사고’ 뒤 지원물품이 처음으로 압록강을 넘어 들어간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용천 지원 1주년을 맞은 이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전남교육청, 익산시 등 ‘용천소학교 건립위원회’가 용천을 방문했다. ‘소학교 건립위’는 소학교를 비롯해 유치원·탁아소·용천역 등의 복구된 시설을 둘러보고 ‘용천’이 민족화해의 상징이 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편집자

“태어나 처음으로 첫 등교 하던 날

정답게 반겨주신 우리 선생님

어서어서 자라서 훌륭한 사람 되자고

한자한자 배워주던 우리 선생님

........


세월이 흘러서 어른 되어도

그 모습 안고서 우리 살래요.“

지난 4월29일 용천 소학교 아이들의 눈물은 아직 채 마르지 않았다. 지난해 폭발사고 때 목숨을 잃은 두명의 교사를 기리는 노래 <우리 선생님>을 부르던 20여명의 용천 소학교 음악소조 아이들의 눈에선 끝내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이날 ‘소학교 건립위’ 관계자 등 11명을 태운 버스는 단둥~신의주를 연결하는 ‘압록강철교’를 넘어 약 40분을 달린 끝에 평안북도 용천에 이르렀다. 1년 전 ‘대폭발의 현장’이었던 용천은 그새 복구 공사가 80% 가량 진행되는 등 활기를 띠고 있었다. 폭발의 진원지인 용천역도, 피해가 가장 컸던 소학교도 복구를 깔끔히 마쳤다. 사고 뒤 2천여개의 살림집이 새로 지어졌고, 유치원은 외형이 다 완성된 상태였다. 도로가 넓어지고 무너진 단층집들이 아파트형 건물로 복구되는 등 도시 전체가 “현대적으로 재건됐다.”

▲ 일년전 가장 피해가 컸던 용천소학교를 방문한 송월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가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둘러보고 있다.

용천 사람들은 이 가운데서도 가장 크게 변한 곳으로 용천 소학교를 꼽는다. 소학교는 폭발사고 전 2700㎡이던 것이 복구 뒤 5100㎡로 두배 가량 커졌다. 장소도 용천시 중심인 ‘중앙 광장’ 옆으로 옮겨 지난해 8월13일 완공됐다. 창틀이나 칠판 등 남쪽에서 지원한 물품으로 마감한 교실 내부는 학교에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각 교실에는 텔레비전과 컴퓨터가 갖춰졌고, 책걸상도 깔끔하게 새 것으로 채워졌다.

최병엽(50) 용천소학교 교장은 “학급마다 새로 갖춘 컴퓨터로 아이들이 ‘컴퓨터 활용 교육’을 하고 있다”며 “사고 전에는 장비 부족 등으로 제대로 실시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달라진 교육 환경을 전한다.

하지만 이런 변화도 아이들 마음속 상처까지 다 씻어준 것은 아니다. 3학년5반 연옥이는 아직도 얼굴에 커다란 화상 흉터가 남았다. 사고 당시 화상을 입어 1주일 이상 입원을 한 연옥이에게 화상은 마음에까지 그림자를 남기고 있었다. “요즘도 부모님들이 화상 흉터를 보시면 몹시 걱정을 해 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잠시 말이 없던 연옥이는 “이젠 일 없습니다”라고 말을 맺었다. 그러나 괜찮다는 연옥이의 표정은 쉽게 밝아지지 않는다.

담임인 조경순 교사는 “지난해 전교생 1300여명 중 56명이 죽고 3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며 “연옥이 같이 상처를 입은 아이가 한 반에 서넛에서 많으면 10명 가까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 아이들도 선생님도 폭발사고의 아픔은 모두 떨어버릴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선생님>을 작시한 송혜영(33)음악소조 지도 교사는 “친자식같이 돌보던 아이들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돌아가신 선생님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 또한 애틋하다고 생각해 노래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자신도 사고 때 상처 때문에 3일 동안이나 의식불명 상태였다는 그는 1주기를 맞아 이제 한걸음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 일년전 폭발 사고로 허물어졌다가 새로 복구된 용천소학교 앞에서 ‘용천소학교 건립추진위’관계자들이 회병엽(왼쪽에서 네번째) 교장과 사진을 찍고 있다.

최 교장도 “사고 1주기인 지난 4월22일 아이들과 선생님이 사고 당시 목숨을 잃은 56명 친구들의 부모님을 찾았다”며 “이는 숨진 학우들이 영원히 우리의 친구라는 뜻과 함께 새롭게 출발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당시 교사와 아이들은 공책과 연필 등 학용품을 가지고 숨진 친구 집을 방문했다. 학용품을 본 부모님 중 몇분은 아이 생각에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찾아온 아이들을 보고 “너희들이 내 자식이다. 새롭게 희망을 갖고 출발하자”고 다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최 교장은 “소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그런 희망을 담아 지난 4월초 학교 안에 사철나무 등 어린 묘목 300여 그루를 심었다”고 밝힌다. 사고 1주기를 앞두고 죽거나 다친 친구들의 숫자 만큼 교정에 나무를 심은 것이다. 용천 소학교 아이들은 아직은 아픔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하지만 교정의 어린 나무가 푸르름을 더해가면, ‘용천의 아픔’도 차츰 ‘희망’으로 바뀌어갈 것이다. 평북 용천/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