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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역지사지합시다 / 김지석

등록 2008-09-11 19:52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 논설위원
아침햇발
“자신이 바라지 않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여러 종교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선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최선인 것이 자신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면서 생활한다.”(힌두교)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말라.”(불교)

“남이 당신에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그들에게 똑같이 하라.”(기독교)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존엄성을 똑같이 인정하고 그렇게 행동하라는 얘기다. 예나 지금이나 통용되는 황금률이다. 이 원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세상은 수많은 시합이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무대다. 그런데 혼자서는 겨루기를 못한다. 상대의 생각이 나와 다르더라도 참가자로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곧, 배제와 차별이 없어야 경기가 성립한다. 공정한 겨루기를 하려면 여기에다 소통과 이해를 더해야 한다. 황금률은 소통하고 이해한 내용을 실천까지 하는 것으로, 공정한 경기를 보장하는 전제다.

정부에 대한 불교계의 분노가 식을 줄을 모른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수십 가지의 불교계 차별 조처가 있었다니 그럴 만도 하다. 지구촌에서 모범적인 다종교 사회인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은 전례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엊그제 ‘종교 편향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부 공직자의 본의 아닌 언행’에 대해 유감의 뜻을 밝혔다. 불교계는 몇 달째 정색을 하고 사과와 실질적 조처를 요구하는데, 이 대통령은 ‘일부 공직자의 본의 아닌 언행’ 탓으로 돌린 것이다. 소통과 이해와는 거리가 멀다. 불교계 사람들이 지금까지 괴담에 휘둘려 왔단 말인가.


이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촛불집회 때와 거의 같다. 대규모 촛불집회가 그렇게 오래 계속된 이유는 정부가 국민을 배제한 채 미국 쇠고기 전면 수입을 결정한 데 있다. 국민은 정부가 자신들을 시합 참가자로조차 여기지 않은 데 대해 분노했다. 그런데 정부는 괴담에 책임을 떠넘겼다. 이 대통령은 마지못해 사과했으나 지금처럼 시기가 늦었고 내용도 현실과는 동떨어졌다. 정부는 나아가 촛불집회에 참여한 이들을 집요하게 추적해 법정에 세우려 한다. 황금률은 어디에도 없다.

경색된 남북 관계 역시 북한을 온당한 시합 참가자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부 정책 탓이 크다. 10·4 정상선언은 정권 차원을 넘어선 남북 사이 합의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자신이 일방적으로 짠 틀에 들어오라고 북한을 압박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은 남북 협력의 당위성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북쪽이 아쉬울 때 남쪽에 쉽게 기댈 수 있어야 한다. 그 전제가 10·4 선언 이행이다.

정당성이 있는 권력은 생각이 다른 상대를 설득하려고 애쓴다. 소통과 이해를 통해 차이를 좁히고 공통분모를 확대해 나간다. 그렇지 못한 권력은 강제나 매수에 기댄다. 상대를 정당한 경기 참가자로 대하는 대신 억압과 조작의 대상물로 다룬다. 분노와 갈등을 증폭시키는 분열의 정치다. 지금 상황이 바로 그렇다.

내일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시대가 달라져도 잘 바뀌지 않는 게 제사 풍습이어서 집안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한편으로는 즐겁지만 뒤쪽에서는 많은 여성이 명절 증후군을 호소한다. 할일의 불공정한 분배 탓이다. 여기서도 해법의 실마리는 황금률에 있다.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는 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역지사지 능력이다. 정부든 개인이든 자신이 조금이라도 힘 있다고 생각한다면 역지사지해서 황금률을 실천할 일이다.

김지석 논설위원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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