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진 전주대 사회과학부 교수
시론
몇 년 전 학생들에게 지속가능개발의 사례조사를 과제로 낸 적이 있다. 한 학생이 당시 난개발로 논란이 되던 지역에 건설 중인 한 아파트를 예로 들고 왔다. 이유인즉슨 해당 건설사가 아파트 단지에 지상 주차장을 없애는 대신 멋진 나무 산책로를 다듬고 주변 하천에 돌다리 경관을 조성하겠다는 이른바 친환경적인 청사진을 대대적으로 선전했기 때문이었다. ‘개발’에 중점을 둔 채 주변만 자연친화적으로 포장하는, 그야말로 지속가능개발에 대한 기업 프렌들리한 해석이다. 환경의식 수준이 발달한 덕택인지 다행히 요즈음엔 그런 류의 답을 가져오는 학생은 없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정부정책을 보면 그때 그 학생의 과제물이 자꾸 머리에 떠오른다.
11일 정부가 각계 인사 200여명을 청와대로 모아 놓고 ‘그린에너지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집중육성대상으로 채택된 9대 산업분야의 기술개발에 5년간 1조7천억의 정부예산을 투입해 수출산업화를 이루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발표는 정부가 그동안 선언적 수준에서 이야기했던 녹색성장 구상을 처음으로 실체화한 것이다.
그린에너지는 지구환경보호의 열쇠이면서 동시에 지속가능한 신산업으로의 전환을 위한 핵심요소로, 기존의 개발패러다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와 혁신을 요구한다. 서구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에너지혁명을 중심으로 한 녹색전환을 차근차근 진행해 온 반면, 우리는 여전히 구시대적인 성장프레임에 갇힌 채 수치 높이기 경쟁에만 몰두해왔다.
사실 녹색성장은 이미 참여정부가 이를 모토로 대대적인 국제회의를 유치하고 추진기구까지 발족시킨 정책이다. 그러나 성장지상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전환에는 접근하지 못한 채 중요한 과학기술 개발정책의 하나 정도로 머물고 말았다. 산업구조의 시스템 전환이 중심에 서지 못한 이러한 정책적 한계는 결국 환경과 그린에너지 개발에서 지지부진한 성과만을 낳았다.
현 정부가 다시 꺼내든 녹색성장계획은 지난 정책에 대한 검토와 교훈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도 그린에너지 전략의 기본 내용들을 보면 이미 지난 정부에서 만들어진 것들과 별 차이 없이 다급하게 작성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목표치만 좀 바뀌었을 뿐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부족하고 투자예산도 향후 10기 이상 지으려는 원전의 1기 건설비보다 적다. 총 에너지공급의 2%대에 머물고 있는 신재생에너지원 중에서 겨우 2%의 비중도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태양, 풍력, 연료전지분야의 국내기술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보급을 확대시킬 새로운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지속가능한 에너지정책으로 전환할 계기로 삼아야 할 그린에너지 계획이 경제부처의 산업화 전략보고서에 그치고 말았다. 사회 시스템의 녹색전환이 아닌 수출시장 진출을 위한 기술개발과 새로운 시장의 창출만이 목적이다. 물건을 만들어 팔기 위한 비즈니스 계획이다 보니 참여하는 행위자도 당연히 공급사업자 일색으로 정작 중요한 소비 쪽의 에너지 전환은 관심 밖이다. 발전차액제도와 같은 정책적 효율성이 높은 시장조정 도구도 축소되고 관주도의 보급수단과 대기업 지원책으로 가득하다. 마치 과거 한국 경제를 견인했던 경제개발계획이 그린이라는 표제를 달고 다시 등장한 듯하다.
서구 선진국의 그린에너지 성공은 더 높은 성장을 위한 에너지기술의 선진화가 낳은 결과가 아니라 지구환경의 위기를 해결하고,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이루며, 인간복지를 지속적으로 향상시키려는 노력이 이루어 낸 사회변혁의 성과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싶다.
임성진 전주대 사회과학부 교수
임성진 전주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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