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현호 논설위원
아침햇발
지금 한국인이 가장 신뢰하는 기관은 군대다. 지난달 <문화방송>(MBC)이 정부 수립 60돌을 맞아 벌인 11개 기관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서 그렇게 나왔다. 군(57.7%)에 이어 시민단체(55.3%)와 방송사(51.4%)가 절반 이상의 신뢰를 얻었을 뿐, 국회(12.6%)와 정부(23.9%)의 신뢰도는 바닥이었다. 법원(41.9%)과 검찰(37.2%)은 경찰(45.0%)보다 낮았다.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지난해 한국정치학회와 한국갤럽의 신뢰도 조사에서도 군을 신뢰한다는 응답(62.7%)이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이 언론(60.3%)과 시민단체(58.4%)였고, 이번처럼 국회(13.1%)와 정당(14.4%)은 꼴찌였다.
한국이 ‘저 신뢰 사회’(low-trust society)라는 건 미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분류가 아니라도 많은 이들이 인정하고 공감하는 바다. 대체로 가족, 친구 등 자신과 가까울수록 신뢰를 집중시키고, 거리가 멀수록 신뢰를 거둬들인다. 국가기구에 대한 신뢰수준이 매우 낮고, 여야·노사·보혁 등 집단 간 불신이 심하다는 점도 특징이다. (성경륭 <한국사회의 불신구조와 신뢰증진 방안>) 그러니 이런 불신은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있다.
그래도 가만히 따져보면, 기가 막힐 일이다. 오랫동안 독재와 억압의 상징이던 군이 이런 신뢰를 받기까지 변신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한 나라의 상비군이라면 그 정도 신뢰는 받는 게 마땅하다. 지금 군이 신뢰도 1위가 된 것은 다른 기관에 견줘 맡은 구실은 그나마 하는 것으로 인정받기 때문일 게다. 군이 유독 잘해서라기보다 다른 쪽이 워낙 못한 탓이라고 봐야 한다.
위험한 것은 이 대목이다. 군은 국가의 중추지만, 민주사회를 유지하는 구심은 될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의회와 정당, 정부, 법원, 언론, 시민단체 등이 각기 일정한 신뢰를 받는 구심집단이 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대의 민주주의에선 무엇보다 의회와 정당이 중요하다. 그런 제도 정치권이 가장 큰 불신을 받고 있다면, 기껏 쌓아올린 우리의 민주주의가 다시 큰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는 얘기일 수 있다.
더한 문제는 집권세력 스스로 이를 부추기고 있다는 데 있다. 청와대는 지난달 종교편향에 항의하는 불교계를 달래기 위해선 어청수 경찰청장 경질이 불가피하다는 한나라당의 건의를 보기 좋게 일축했다. 앞장선 박희태 당 대표의 낯이 말이 아니게 됐다. 며칠 전엔 이명박 정부의 국정 수행에 차질을 빚었다며 한나라당 내 이명박계 의원들이 떼지어 홍준표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논란 끝에 홍 원내대표는 유임됐지만, 이명박계 의원들은 홍준표 길들이기와 겁주기 목적은 달성했다고 의기양양이다. 그렇게 여당의 리더십에 상처를 입히고, 청와대의 말만 고분고분 듣는 ‘시녀’로 만드는 데 열중한다면 정당 정치는 살아날 길이 없다.
지금 한나라당을 걱정하는 이유는 달리 있지 않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언론과 국민의 직간접 행동이 민주 정치의 실제 과정에서 점차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 요소는 정부의 행위를 견제하는 원동력이 되고, 국민의 참여도 하락과 대의 민주주의의 쇠락으로 발생하는 손실을 벌충해 주는 구실을 한다. (<폭력의 시대>) 이명박 정부는 바로 그 두 요소를 억누르고 나섰다. 거칠 것 없는 언론장악 시도와 촛불집회에 대한 온갖 탄압과 보복이 그러하다.
그렇게 민주정치의 새 활로까지 막으려 한다면 남은 길이라도 열어둬야 한다. 한나라당이라도 제구실을 하게 살려라.
여현호 논설위원yeopo@hani.co.kr
여현호 논설위원yeop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