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우 기자
유레카
광우병 사태로 곤욕을 치른 영국의 상원 특별위원회가 2000년 <과학과 사회>라는 보고서를 냈다. 광우병 혼란을 교훈 삼아, 보고서는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관한 깊은 자성과 방향 전환을 담았다. 이전까지 대중은 더 많은 과학 지식을 깨우쳐야 하는 계몽의 ‘대상’이었다. 광우병이 고정관념을 바꿔놓았다. 먼저, 보고서는 대중의 과학 신뢰가 위기에 처했음을 직시한다. 또 ‘과학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인다. “지금까지 확실하다고 알려진 것들에도 불확실성이 개입할 수 있다 … 유전학처럼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 분야에서는 많은 것들이 불확실한 상태다.” 그래서 시민 ‘주체’의 참여는 과학기술 정책 결정에 꼭 필요한 절차다.
올해 7월 영국 혁신대학기술부가 새로 펴낸 <과학과 사회를 위한 비전>이 누리집에 공개됐다. 과학에 흥미를 느끼고 과학의 가치를 평가할 줄 아는 사회, 과학의 효용을 믿는 사회, 양질의 과학 연구인력을 갖춘 사회를 ‘영국을 위한 새 전략’ 비전으로 내걸었다. 그 사회로 가는 길은 반성에서 출발한다. “몰랐던 과학 지식을 알게만 되면 대중이 과학의 효용을 확실히 지지하리라고 여겼던 예전 방식이 성공했던 적은 드물다”, “(광우병 사태를 겪은) 2000년 이후 대중 참여는 쌍방향 소통과 대화를 통해 강조돼 왔으며, 이에 대해선 지금도 강한 (사회적) 합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과학 쟁점에 대한 시민 참여가 시도된 지 올해로 10년이다. 1998년 시민과학센터와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유전자조작식품을 주제로 시민합의회의를 처음 열었다. 이후에 여러 시민 주체의 포럼이 잦아졌지만 실질적 정책 반영은 아직 멀다. 과학에 관해 말할 권리를 독차지하려는 전문가주의는 여전히 팽배하다. 일부에선 광우병 논란 뒤에 ‘과학과 사회의 분리’가 되레 강화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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