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구 논설위원실장
아침햇발
이제 좀 차분히 되돌아볼 때다. 세계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미국발 금융위기는 어디에서 왔고, 무엇이 문제이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선, 이번 사태의 원인을 살펴보자.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주택시장의 거품이다. 부풀 대로 부푼 부동산시장 거품이 꺼지면서 위기는 시작됐다. 우리는 종종 부동산 거품의 심각성을 간과한다. 복잡하게 설계된 파생 금융상품으로 얽히고설키고,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진 금융시장이 위기의 폭과 깊이를 더했다.
이번 사태의 교훈은 명백하다. 부동산 거품은 언젠가 터진다는 상식을 다시 확인해 준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건설경기 부양을 통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명박 정부는 실제로는 경제를 살리는 게 아니라 경제를 파탄의 길로 이끌고 있다. 주택시장은 그동안 끼어 있던 거품이 조금씩 꺼져가는 중이다. 거품이 꺼지면서 우리 경제와 이해당사자들에 고통을 주고 있다. 지금은 그 고통을 참으며 거품이 가라앉길 기다려야 할 때다.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부동산 거품을 더 키우면, 우리 경제는 머잖아 총체적 파국에 빠지게 될 것이다.
‘시장 실패, 국가 부활’ 논란은 복합적이다. 미국 금융위기가 시장의 실패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이제 모든 것을 국가 규제로 묶을 것인가? 시장 실패를 인정하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지는 않을 것이다. 시장의 어떤 부분이 고장 났는지, 그리고 그것을 교정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면밀히 검토한 뒤 시장의 작동 시스템을 수정·보완할 것이다. 인류가 만들어낸 제도 중 시장만큼 효율적인 게 없다는 데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것을 시장 논리에 내맡기는 시장만능주의로는 시장 자체가 붕괴된다는 건 분명해졌다.
국가 또는 정부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다. 교과서적으로 말하면, 시장이 실패하면 국가 개입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것도 구분해서 봐야 한다. 시장 논리에 맡기면 원천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경우는 당연히 국가 역할이 지속적으로 강화돼야 한다. 사회적 약자 보호나 공공성이 유지돼야 할 부문 등이 그런 경우다. 그러나 국가 개입보다는 시장에 맡길 경우 훨씬 효율적인 분야에서 일시적으로 시장 기능이 망가졌을 때, 국가의 개입은 한시적이고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
우리의 경우, 국가의 개입 강화는 또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국가를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명박 정부다. 더 깊이 들어가면 실질적으로 국가 개입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 강만수 장관을 비롯한 현 경제팀들이다. 이들에게 우리 경제에 좀더 개입해 달라고 요구한다? 끔찍한 일 아닌가?
금융규제와 금융회사 모델에 대한 논의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금융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해서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간단히 말하긴 어렵다. 우리와 미국은 금융시장의 규모나 행태, 그리고 규제 수준에서 천양지차다. 미국 금융시장이 왜 무너졌는지 그 원인을 따져 반면교사로 삼으면 된다. 특히 미국 투자은행의 몰락은 산업은행 민영화를 통해 대형 투자은행을 육성하려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괘종시계의 시계추는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쉼 없이 흔들린다. 시계추가 너무 왼쪽으로 갔다고 아예 오른쪽에 잡아매려 한다면 시계로서의 기능을 잃는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의미와 그것이 주는 교훈은 되새기되, 긴 흐름 속에서 너무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균형 감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twin86@hani.co.kr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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