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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한 명의 피해자? 강 장관이 떠오른다 / 전강수

등록 2008-09-26 20:27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부동산통상학부 교수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부동산통상학부 교수
시론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의 과표 적용률 동결, 세부담 상한선 인하, 농특세 폐지 등을 발표하며 기회를 엿보던 이명박 정부가 드디어 종부세 무력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종부세 부과 기준을 끌어올려 과세 대상을 대폭 축소하고, 세율을 인하하며, 고령자 세액공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또 사업용 토지에 대해서는 세부담을 대폭 줄여주겠다고 한다. 이 방침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우리나라 보유세 부담은 강화 정책이 시작되기 전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여론의 역풍이 예상외로 거세다. 민주당 이용섭 의원의 조사에 따르면 반대 여론이 83.7%에 이른다고 한다.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반발 기류가 형성됐던 사정에 미뤄보면 국민들의 반발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장관은 부자들의 세금을 감면하는 것이 아니고 원칙에 맞지 않는 징벌적 세금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강행 의지를 밝혔다.

이명박 정부가 종부세를 나쁜 세금으로 단정하는 유력한 근거는 오로지 한 가지다. 담세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과중한 부담을 지우는 징벌적 세금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제시하는 근거는 진위가 의심되지만 설사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80% 이상의 반대 여론에 맞서면서까지 종부세 무력화 방침을 강행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종부세로 상징되는 보유세 강화 정책의 유익이 그것을 압도하고 남을 만큼 크기 때문이다. 보유세는 양극화의 주범인 부동산 불로소득과 부동산 투기를 근절한다. 보유세가 제대로 부과된다면 투기 목적으로 부동산을 다량 보유하면서 저사용 상태로 방치하는 경향이 사라질 것이므로 부동산 이용의 효율성도 높아진다. 또 부동산 가격 변동의 진폭이 축소되기 때문에 부동산시장이 금융시장과 거시경제를 불안하게 만드는 일도 줄어든다.

특히 종부세는 세수의 상당 부분이 교부세로 지방에 배분되어 균형 발전과 취약 지역의 복지·재정 수요에 도움을 주고 있다. 담세 능력을 초과하는 과도한 세부담이라는, 진위가 의심스러운 주장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 많은 유익을 주는 종부세를 무력화시키겠다고 하니 무모하기 짝이 없다.

더욱이 문제는 정부가 제시한 근거 자체가 타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이다. 조세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지표로는 흔히 실효세율,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부담 비율, 조세총액 대비 세부담 비율 등이 사용된다. 이 세 가지 비율을 통해 확인되는 우리나라의 보유세 부담은 미국·영국·캐나다·일본 등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수준이다. 최상위 종부세 대상자(주택 공시가격 25억원 정도)의 보유세 부담은 이미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지만, 해당자는 극소수다.

정부는 이 세 가지 비율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소득 대비 보유세 실효세율이라는 정체불명의 지표를 산출 근거도 밝히지 않고 제시하거나, 이름만 비슷할 뿐 보유세 부담을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재산과세의 비중이 높다는 사실을 내세워 우리나라의 소득 대비 보유세 부담이 높다고 강변한다. 소득이 없는 은퇴 고령자 문제에 대해서는 납부유예제도라는 훌륭한 대안이 이미 마련되어 있음에도 그냥 무시해 버린다.

청와대는 “한 명의 피해자라도 있다면 바로잡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세심하고 자비로운 듯 보이지만, 국정을 책임진 사람들이 취할 자세는 아니다. 한 사람을 구제하려다가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국가경제가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번 조처로 구제하려는 한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할 때 강 장관 얼굴이 떠오르는 것은 지나친 상상인가?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부동산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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