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
유레카
한 세대를 풍미한 신자유주의 체제가 허물어지고 있다. 고삐 풀린 금융자본이 주도해 온 미국식 신자유주의 체제는 어떤 방식이든 큰 폭의 수정이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 안에서는 금융 자유화를 부르짖는 목소리가 높다. 거대한 흐름에 맞서 싸우겠다는 용기라기보다는 좁은 사고 틀에 갇혀 목소리만 높이는 당랑거철의 태도다.
유효성을 잃은 사고방식을 뒤늦게 고집해 일을 그르친 사례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1990년대 북-미 협상 분위기에서 김영삼 정권이 냉전식 대결 논리를 고집하다 경수로 부담만 떠안은 것이 그 가운데 하나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퇴조기에 들어간 1980년대에 일부 운동권 세력이 비현실적 혁명론에 기댔던 것도 그렇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교조적 주자학에 기초한 소중화주의를 고집하다 세계사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한 조선 후기 양반 지배층의 실패가 뼈아프다.
생생한 보기가 더 있다.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 출범과 함께 기승을 부리던 네오콘이 뒤로 물러난 지금, 뒤늦게 이명박 정부 출범과 더불어 득세한 한국판 네오콘이 그것이다. 이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한 남북 관계는 경색되고 북한 핵 문제 등 한반도 관련 사안에 대한 우리나라의 영향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이런 상황을 ‘엇박자의 운명’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지정학적인 엇박자의 운명이 마치 악령처럼 휩싸고 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네오콘이 본격적으로 퇴조하는 바로 그 순간에 한국 보수세력은 신자유주의와 네오콘적 사고방식으로 무장하고 권력의 전면에 등장했다. 이들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바꿀 것인가, 아니면 엇박자에 따른 실패를 감수할 것인가.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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