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영무 논설위원
아침햇발
사람들로 북적대는 신촌에 포장마차가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경기가 적당히 안 좋으면 값싼 포장마차는 잘되는데 워낙 바닥이니 이마저도 문을 닫는다고 한다. 서민 경기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음식점·목욕탕·미용실·카센터·옷가게·전자제품 대리점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휴폐업이 속출한다. 폐업 컨설팅 업소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은 자영업의 몰락을 그대로 보여준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데 미국발 한파로 내년은 더 암담하다. 최전선의 영세 서민들은 ‘고난의 행군’을 각오해야 할 처지다. 미용실 문을 닫거나 포장마차에서 손을 놓는 순간 생존의 벼랑에 몰린다. 가난은 눈에 잘 띄지 않을 뿐 도처에 있다. 지금도 정부의 생활지원을 받지 못하는 절대 빈민이 200만명을 넘는다.
미국의 금융위기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세계경제는 타격을 입을 것이고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두말할 나위 없다.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한국경제, 아직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았다’며 올해 3%대 성장에 그치고 내년에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한다. 국내 여러 연구기관들이 내년 성장률을 3~4%로 전망한다. 한국 정부만 나 홀로 성장을 자신하고 있다.
정부는 새해 예산안을 짜면서 성장률이 내년에 5%를 회복하고 2011년에는 6%로 올라선 뒤 2012년 6.8%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게 된다면 기적이다. 정부의 예상은 이미 크게 빗나갔으며 통제권 밖의 변수가 너무 많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경쟁 환경 속의 기업들은 ‘시나리오 경영’에 익숙하다. 환율이나 원자재 값 같은 외부 변수가 요동칠 때를 대비한 것이다. 지금 상황은 정부에 기민한 대응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대로 경제가 살아나거나 형편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서민은 없다.
우리 정도의 소득이면 국민 모두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힘겹고 불안해하는 것은 시장에 고스란히 노출된 탓이 크다. 외환위기 이래로 효율과 경쟁의 시장원리는 지배원리로 작동해 왔다. 실직과 영세자영업은 시장원리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공공부문이나 기업에서 구조조정된 숱한 인력이 자영업으로 몰려 제살 깎아먹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복지제도는 취약해 거의 전적으로 시장소득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구조의 시장에 맡겨선 고통을 덜기는커녕 심화될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시장은 패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주먹이다.
희망은 시장의 실패를 정부가 나서서 치유하는 데서 잉태된다. 허망한 성장구호가 아니라 적절한 고통분담에 과녁을 맞춰야 할 때다. 진짜 실용정부라면 빛바랜 청사진을 그만 접고 위기의 터널을 슬기롭게 빠져나가는 데 역량을 집중하는 게 맞다. 시장논리를 넘어 공동체적 관점에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복지 및 직업훈련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과실에 상응하는 고통분담을 유도해 조세기반부터 확충할 필요가 있다. 감세는 이 중요한 순간에 정부의 역할을 방기하는 것이다. 감세는 패자를 배제하는 전략이다. 당장 내년에 감세를 하면 13조원의 세입이 줄어드는데, 이 돈이면 기초생활 보장 예산을 두 배로 늘리거나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열 배 늘릴 수 있다.
현정부는 그저 제동장치를 풀고 고속주행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기엔 도로사정도 안 좋고 날씨도 너무 나쁘다. 차량을 정비하고 승객을 안심시키는 게 우선이다. 그것은 형편이 나아질 때를 대비해 성장 잠재력을 다지는 일이기도 하다. 정부가 있으나마나 하면 시장은 서민들을 거침없이 벼랑 아래로 내몰고 사회를 갈라놓을 것이다.
정영무 논설위원young@hani.co.kr
정영무 논설위원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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