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정숙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시론
2차 대전 시기 독일에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군인으로 복무하다 중상까지 입었던 그는 히틀러의 광적인 전쟁정책에 반대하여 국방군의 일부 고위장교들이 꾀한 총통 제거 음모에서 핵심적 구실을 했다. 1944년 7월20일, 슈타우펜베르크는 히틀러가 회의를 주재하면서 앉기로 되어 있는 좌석 아래 시한폭탄을 설치했다. 그런데 회의실을 뒤흔들고 네 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발사건에서도 히틀러는 살아남았다. 대령과 동지들은 다음날 총살당했고 유해는 불태워졌다. 그러나 나치의 패망 이후 대령은 나치에 대한 독일인들의 저항을 상징하는 인물의 하나로 떠오르게 되었다. 독일 정부는 그와 동료들이 처형당한 곳에 기념비를 세웠고, 수많은 영화, 티브이 드라마가 ‘7월20일의 사람들’ 이야기를 다뤘다. 2009년 2월에는 톰 크루즈가 슈타우펜베르크 역으로 출연하는 영화 <발퀴레>가 개봉된단다. 그리고 각급학교 학생들이 그에 대해 배운다.
보수주의자였던 독일의 한 장교 이야기를 떠올린 것은 한국군대와 관련된 두 가지 언론보도를 잇따라 보고서였다. 8월에 <문화방송>이 한 여론조사에서 한국의 제도 기관들 가운데 가장 신뢰받는 집단은 군이라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그동안 군대는 쿠데타와 정치개입을 일삼는 집단이고 사회적으로 군사문화를 만연시키는 주역이라 여겨왔던 사람들은 낯선 느낌마저 받았겠지만, 이는 필시 1990년대 이후 정치개입의 전통과 단절하고, 군대개혁과 정치중립을 위해 기울인 국방부의 노력에 국민들이 보낸 격려였으리라.
그런데 최근 보도는 또 무엇인가. 국방부가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 내용에 간섭하고 나섰는데, 독재자들의 행적을 미화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바꾸라는 요구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고 한다. 예컨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신군부가 집권 과정에서 민주화 세력의 요구를 무력으로 탄압했던 일은 ‘친북 좌파의 활동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다’는 구절로 정당화하려 했단다. 눈을 의심했다. 신군부에 의해 활동이 차단된 친북 좌파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나? 인터넷 댓글도 실명으로 달아야 한다고 아우성치는 세상인데, 이 악마화된 존재, 친북 좌파는 왜 익명으로 지칭되나?
국방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예산과 인력을 들여 군대가 관련된 불행한 과거사를 자체적으로 정리하면서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혔다. 신군부 집권기에 일어난 반인륜적 국가폭력, 인권침해 사태가 집중 규명되었다. 그 보고서의 작성자들은 과거사 규명 작업으로 밝혀진 내용을 군의 정신교육, 인권교육 자료에 포함시켜서 군이 정치중립, 인권준수와 관련하여 늘 스스로 깨우칠 수 있게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불과 10개월 전의 일이었다.
슈타우펜베르크 이야기를 언급한 것은 군이건 다른 기관이건 어떤 과거사를 극복 대상으로 삼고, 어떤 기억을 보존하여 이를 자기 정당성의 근거로 삼는지 생각해 보자는 뜻에서다. 사회적 정체성 확립과정에서 기억의 선별 작업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학살이나 군부독재를 정당화한다는 것은 그 주도세력과 자기를 동일시한다는 뜻이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당연하게 여기는 젊은 세대가 이러한 군을 어떻게 볼까? 불행한 과거사와 대면하고 이를 자기 존재의 궤적 속에 수용하고 넘어서는 것은 개인에게도 쉽지 않지만, 집단에게는 더욱 힘든 일이다. 집단 전체의 명예와 자존심, 운명이 걸렸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어두운 과거를 불러내 자기 동일시의 근거로 삼기보다, 과거사를 반성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 자체를 자신의 역사에서 가장 명예로운 일로 여길 수는 없는가? 히틀러가 아니라 그에 저항했던 사람들을 자부심의 원천으로 삼고자 하는 독일 군부의 노력은 참고가 된다.
한정숙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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