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
유레카
영국 역사학자 존 맨은 <알파 베타>(2000)에서, 중동 주변에서 발달한 서양 알파벳이 어떻게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등 고대문명 중심지의 언어보다 널리 쓰이면서 세상을 바꿨는지를 추적해 주목을 받았다. 열렬한 서양 알파벳 예찬자인 그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 알파벳”으로 꼽은 게 바로 한글이다.
한글은 ‘문맹률 제로의 문자’다. 유네스코가 문맹퇴치에 공헌한 이에게 해마다 주는 상에 세종대왕상이라는 이름을 붙인 까닭이다. 한글은 제자 원리와 창제 동기가 설명된 문헌이 남아 있는 유일한 문자이기도 하다. <훈민정음 해례본>(1446)이 그것이다. 이 책의 기본 핵심은 세종이 쓰고 여덟 학자가 자세히 풀어 완성했다. 당시 이들의 나이는 세종(49)과 정인지(50), 최항(37) 외에는 모두 20대였다. 세종은 왕과 백성이 소통하려면 문자 모순을 바로잡는 것이 근본이라고 봤다. 세종의 이런 의지에 젊은 집현전 학자들의 열정이 보태져 한글이 탄생했다.
영어학자인 김미경 교수는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 한글>에서, 오늘의 한글을 있게 한 세 번의 혁명을 꼽는다. 첫째는 한글 창제이고, 둘째는 1894년 고종이 ‘대한제국 칙령 제1호’에서 한글을 국가 공식문자로 선포한 일이다. 셋째는 <한겨레> 창간과 더불어 한글전용과 가로쓰기 체제로 일간신문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이제 한글 세계화를 향한 제4의 한글혁명을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이의 성공은 “한국에서, 그리고 문자의 한계를 경험하고 있는 더 많은 나라에서 한글을 이용해 정보 교환의 효율성과 민주성을 얼마만큼 확대시키느냐”에 달렸다.
그런데 현실은 영어몰입 공교육과 국제중 설립이 교육개혁인 것처럼 얘기될 정도로 어그러져 있다. 한글날이 법정 공휴일에서 탈락한 지도 18년이 됐다. 내일이 562돌 한글날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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