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논설위원
유레카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국민들을 상대로 라디오 연설을 시작한 것은 대공황 시기인 1933년이었다. 첫 연설의 제목은 ‘은행 위기에 대해서’였다. 아무런 격식 없이 때론 ‘안녕하십니까, 친구들’이란 인사로 시작하는 연설은 난롯가에서 주고받는 얘기처럼 친근해 ‘노변정담’(fireside chats)이라 했다. 청취율은 다른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보다 높았다. 루스벨트는 이를 통해 국민과 소통하며 뉴딜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었다.
텔레비전에 밀려 한물갔다고 여겼던 라디오 연설을 다시 부활시킨 이는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었다. 라디오 아나운서를 했던 레이건은 라디오의 영향력을 꿰뚫어 봤고, ‘위대한 소통자’(The Great Communicator)란 별명을 얻었다. 생방송을 고집한 탓에 실수도 있었다. 1984년엔 마이크를 켜놓은 채로 “곧 소련 공습을 시작하겠다”고 농담했다가 이게 그대로 방송을 타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라디오 연설이 꼭 성공하는 건 아니다. 조지 부시 대통령도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6분(미국 동부시각) 라디오 연설을 한다. 그의 연설은 대개 전날 녹음된다. 백악관은 미국 내 1만4천여 라디오 지국 가운데 몇 곳이나 대통령 연설을 중계하는지 조사한 적이 없다. 소통에서 중요한 건 방식이 아니라 대통령의 열정과 진심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노변정담식의 라디오 국정연설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이 연설이 정착하려면 최소한 두 가지가 필요하다. 우선, 레이건처럼 생방송으로 해야 한다. 실수가 나올 수 있지만, 생생한 대통령의 육성을 국민들은 듣고 싶어한다. 두 번째는 야당에도 똑같은 기회를 줘야 한다. 미국에선 민주당의 대표적 정치인들이 돌아가며 역시 토요일에 대통령과 같은 분량으로 연설을 한다. 그래야 정치적 편파성 시비를 벗어날 수 있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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