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현호 논설위원
아침햇발
어려운 시절이다. 공황·패닉·통제불능 따위, 경제심리를 생각하면 함부로 써선 안 될 말들까지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으니, 보통 심각한 경제위기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앞’과 ‘옆’이 보이지 않으니 더 두렵다는 말들도 한다. 경제가 어디로 갈지, 장차 어떤 모양이 될지 자신있게 말하는 이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누구도 옆을 부축하거나 구명대를 던져주기 힘든 상황이기도 하다. 제 배를 채울 속셈일지언정 도와주겠다는 이가 있었고, 그나마 따를 모델이라도 있었던 10년 전과는 또 다르다. 지금은 캄캄한 어둠 속, 험한 바다에서 한 조각 작은 배에 탄 형국이다.
그런 총체적 불확실성은 사람을 두렵게 만든다. 공포와 탐욕이 시장을 이끄는 힘이라면, 이제는 공포가 지배한다. “새로운 위험에 관한 무서운 이야기들은 단지 사람들을 초조하게 하거나 두렵게 만드는 정도가 아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기존에 갖고 있던 두려움을 강화시키며, 사람들이 처신하는 방식을 형성하거나 변경시키는 데 일조한다.”(프랭크 퓨레디, <공포의 문화>)
공포는 이미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은행과 대기업들은 달러 등 유동성 확보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환율 상승을 부추기는 악순환이나, 중소기업의 자금난 악화는 우선 고려 사항이 아닌 듯하다. 주식시장 안정을 위해 매도를 자제하겠다고 결의했던 투신권은 다음날 일제히 팔자로 나섰다. 각자 제 살길을 찾겠다고 덤비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양상이다. 그런 아수라는 외환위기 경험에서 비롯됐을 게다. ‘괜찮다’는 말만 되뇌던 정부 탓에 큰 낭패를 당한 경험은 경제주체들에게 깊이 각인돼 있다.
이제 금융에서 실물경제로 번졌다는 위기가 봉급생활자나 자영업자 등에게까지 직접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면 공포는 더 커질 게다. 그 양상이 어떨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금 모으기 운동’ 같은 일만 벌어지진 않을 것 같다. 지금의 리더십이 그때 정도의 신뢰를 받지도 못하는데다, 실직과 가계 붕괴 등 두려웠던 경험이 새로운 위험으로 증폭되면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정부는 그런 경험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 같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현실화할 때까지도 10년 전처럼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이번엔 허둥대기만 했다. 대통령과 기획재정부 장관이 상황을 실제보다 악화시키는 발언을 번갈아 했다. 경제 조타수에 대한 불신이 괜히 나온 건 아니다.
더 나쁜 것은, 선장의 엉뚱한 짓이다. 위기 경보가 높아지던 지난 몇 달 사이 정부가 가장 힘을 기울인 일은 종부세 완화 등 감세정책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뜻이라고 한다. 하지만, 경제위기 탓에 그런 감세는 큰 효과를 발휘하긴 힘들어졌다. 반면, 사회적·경제적 약자를 지원할 재정 여력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비유하자면, 체력 좋은 선원에게 고기 한 점 더 먹이겠다고 약상자와 구명대를 바다에 던지는 꼴이다.
또 있다. 이 대통령은 국가정체성 차원에서 교과서 개편을 강행하겠다고 말했다. 좌파 세력이 국가를 흔들려 한다며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도 감추지 않았다. 이념 논쟁과 괜한 갈등만 부추기는 일이다. 제 할 일 제대로 하기에도 바쁜 격랑 속 배 위에서 선장이라는 이가 싸움을 만드는 꼴이다.
가뜩이나 다들 두려움과 혼란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기업에는 정부의 위기대응 능력을 신뢰할 만한 조처가, 가계에는 사회 안전망에 대한 확신이 필요한 때다. 그런 노력은커녕 엉뚱한 짓으로 배를 위태롭게 해선 안 된다. 애초 다짐대로 지금은 경제 살리기에 올인할 때다. 여현호 논설위원yeopo@hani.co.kr
가뜩이나 다들 두려움과 혼란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기업에는 정부의 위기대응 능력을 신뢰할 만한 조처가, 가계에는 사회 안전망에 대한 확신이 필요한 때다. 그런 노력은커녕 엉뚱한 짓으로 배를 위태롭게 해선 안 된다. 애초 다짐대로 지금은 경제 살리기에 올인할 때다. 여현호 논설위원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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