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성만 여론미디어팀장
편집국에서
이명박 대통령 ‘선거운동원’을 지낸 구본홍씨가 <와이티엔> 사장에 선임된 지도 벌써 석 달이 되어 갑니다. 그동안 와이티엔에서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구 사장 반대 투쟁의 메뉴도 다양했습니다. 출근 저지와 단식 같은 고전적인 방식 사이사이 창의적이면서 호소력 있는 ‘아이템’들이 등장했습니다. 낙하산 사장 거부 구호 팻말이 생방송 중에 기습적으로 노출됐고, 앵커가 검은 옷을 입는 ‘블랙투쟁’까지 선보였습니다. 회사 인사위와 경찰의 출석 요청도 투쟁의 기회로 활용했습니다. 노조원들은 당당히 출석해 정당성을 호소했습니다. 이 사이 인사도 있었고 노조원 33명에 대해 중징계 처분도 있었습니다. 지난 8일에는 구 사장과 노종면 노조위원장이 국정감사 증인으로 나섰습니다.
하나 더 꼽을 게 있습니다. 구 사장은 지금까지 사장실 바깥을 맴돌고 있습니다. 노조원들의 저지에 막혀 사장실 출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회사에 나오더라도 다른 간부의 사무실 등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구 사장은 이런 처지를 “엘리베이터도 못 타는 상황”이라고 자조했습니다. 사원 6명을 해고한 뒤 사장의 처지는 나아졌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주 월요일 이후 구 사장은 아예 회사에 얼굴을 내비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석 달을 떠올리면서 분명해진 게 하나 있습니다. 구 사장의 처지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권에서도 사퇴론이 솔솔 나오고 있습니다. 노조는 어떻습니까. 회사 쪽의 가혹한 조처가 나올수록 조합 집행부와 노조원들의 신뢰는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노종면 위원장은 그러더군요. 블랙투쟁에 대해 노조 집행부가 주문한 것은 단 한 가지였다고 합니다. 강제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아이디어와 실행 모두 조합원들의 자발성으로 이뤄졌다고 합니다. 단식 역시 젊은 기자들이 먼저 제안했다죠. 지금 2007년과 2008년 입사자들은 해고를 당한 선배들에게 매일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선배의 얼굴에 웃음을 주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왜 주총에서 사장으로 선출된 구 사장의 처지가 힘들어지고 있는 걸까요. 그를 사장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와이티엔 구성원들의 생각이 더욱 단단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청와대와 여권 사람들은 그들이 와이티엔 사태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며 ‘낙하산 인사’라는 규정에 억울해합니다. 사장 선임 절차가 시작되기도 전인 4월 초 정치권에서 구본홍씨 내정설이 돌았습니다. 이후 사장추천위원회와 이사회 그리고 주총은 이 설을 사실로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와이티엔 사태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는 여권의 핵심 인사들은 8월 이후 여러 경로로 “구 사장을 받아라, 그러지 않으면 와이티엔이 문닫을 수 있다”는 경고를 와이티엔 노조 쪽에 해왔습니다. 민영화나 보도채널 재승인을 고리로 뒤에서 겁박한 것이죠. 신재민 문화부 차관의 와이티엔 주식 매각 발언에 대해 여권에서조차 ‘노조 압박용’이라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구 사장의 배후에 정권이 있지 않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겠죠.
기자들의 가장 큰 자부심은 ‘공익의 최전선’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지금 한목소리로 낙하산 사장은 안 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큰 희생이 따를 수 있는데도 물러나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 목소리를 찍어 누르거나 거스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양심을 지키려는 기자들이 회사 바깥으로 쫓겨나는 일이 지금 시대에도 가능하다니, 구제금융 위기만큼이나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노종면 위원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구씨가 물러나는 게 모두를 위해 좋은 일입니다.” 노 위원장이 말하는 모두에는 당연히 구 사장도 포함될 것입니다.
강성만 여론미디어팀장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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