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우 소설가·한신대 문창과 교수
시론
얼마 전 서울에서 ‘제1회 한·일·중 동아시아 문학포럼’이 열렸다. ‘동아시아가 추구할 공동 가치와 미래 비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상호 이해와 우의를 다지는 화합과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를 내건 행사였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멀다는 세 나라의 문학인과 지식인 60여명이 대거 참여한 이 자리에 필자도 발제자 자격으로 참가해 대부분의 일정을 지켜보았다.
물론 이전에도 한-일, 한-중 문학행사는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세 나라 문학인이 한데 모이기는 초유의 일이고, 최근 서로간에 이런저런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었던 터라 안팎으로 관심을 불러 모은 자리였다. 종래의 정치적 경제적 관점이 아니라, 문학을 통해 얽히고설킨 동아시아를 새롭게 읽어내고 함께 머리 맞대고 얘기해 보자는 것. 그런 점에서 이번 포럼은 ‘경계 허물기’를 위한 문학적 실천이라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 이를 만했다.
행사는 이틀 동안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렸다. 총 11개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빡빡한 일정임에도 시종 진지한 분위기였다. 애초에 정치나 민족 따위 예민한 문제는 가급적 묻어놓기로 하고, 문학과 문화, 지역 공동체, 고향 등 보편적 주제를 놓고 이야기가 오갔다. 역시 짐작했던 대로, 세 나라 작가들이 한데 마주 앉고 보니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주로 자신의 작품이나 성장 과정 등 개인적인 경험을 발표했지만, 그 속에서 당연히 각자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의 편차가 선명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문학이란 그러한 총체적 배경 안에서 개인의 삶을 발효시켜 내는 작업이 아닌가.
나로서는 특히 ‘민족’ ‘국가’ 라는 동일한 단어에서 각기 상이한 의미와 관점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그 차이의 근원은 다 같이 불행한 근대사에서 비롯된다. 일본의 비판적 문학인과 지식인에게, 국가나 민족은 벗어나야 할 울타리 혹은 흐름을 멈춘 늪인지도 모른다. 그 단어엔 국민을 전쟁터로 내몬 과거 전체주의의 악몽, 그리고 변혁을 허용치 않는 고도로 안정된 현 사회 내부의 초조함과 좌절감이 섞여 있는 듯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위시한 일본 현대 소설의 ‘지구인’ 혹은 세계를 떠도는 관념적 디아스포라의 주인공들이 그러하듯이. 또 중국의 경우, 민족과 국가는 적어도 과거의 영광을 복원해야 할 주체 혹은 거대한 원심력의 중심이라는 이미지 쪽에 아직은 더 가까워 보인다.
반면 우리에게 그것들은 여전히 진행 중인, 둘로 쪼개진 채로 남겨져 있는 미완성의 단어다. 당당하게 훌훌 벗어날 수도 차마 내려놓을 수도 없는, 두렵고도 고통스런 부채 같은 것 말이다. 우리 문학의 발걸음이 아직은 마냥 경쾌하고 홀가분할 수만도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날은 여전히 어둡고 갈 길은 먼데, 뒤에 두고 온 집 생각이 자꾸만 발목을 잡아채는 것을.
포럼 행사 못잖게, 닷새 동안 서로 얼굴을 익히고 대화를 나눈 시간은 분명 소중한 체험이었다. ‘동아시아 문학포럼’은 앞으로 한 해 걸러 세 나라에서 번갈아 열린다고 한다. 진정한 이웃이 되려면 먼저 정직하게 자문해야 하리라.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아니 얼마나 모르고 있는가. 질문과 반성을 끌어내는 힘, 그 소중한 몫을 어쩌면 문학이 해낼 수 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임철우 소설가·한신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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