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시론] 분노와 상심으로 얼룩진 농심 / 이창한

등록 2008-10-20 20:57

이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이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시론
불과 일주일 사이 온 국민이 ‘쌀 직불금’이 뭔지, 문제점이 뭔지를 알게 되었다. 농민들만의 공허한 외침이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다. 이건 전적으로 ‘쌀 직불금’ 부정 수령에 연루된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 그리고 중하위 공무원들 덕이다. 사실 ‘쌀 직불금’ 부정 수령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수년 전부터 많은 농민과 농민단체가 수없이 제기해 왔던 문제다. 농사짓는 농민 당사자가 아니라 땅주인이 직불금을 받아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는데 이를 따지고 들면 다음해부터 농사를 짓지 말라고 할까 봐 농민들은 속만 썩여 왔다. 농민들은 그동안 이런 하소연을 농민단체를 통해 정부에 해 왔다. 그러나 이를 책임져야 할 행정부서는 고작 ‘직불금 부당신청 신고센터’ 달랑 하나 설치해 놓고 관리감독 하고 있다는 말로 일관했다.

지난해 3월 당시 농림부 관계자는 인터뷰에서 “직불금 부정 수령 문제는 농민들이 신고센터에 신고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농민들이 농지를 임차받지 못할까 봐 신고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임차계약은 개인간 합의 사항으로 정부가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고 무책임하게 답변하였다. 국민 세금이 부정한 방법으로 이른바 ‘있는 사람들’에게 줄줄 새는 것을 외면했을 뿐만 아니라 약자인 농민들의 처지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지난해 4월부터 한 달간 ‘쌀 직불금’ 부정 수령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있었음에도 정부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었다.

정부의 태도가 바뀐 것은 최근 일이다. 올해 10월1일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감사원 감사자료 열람 결과 부정하게 직불금을 수령해 간 사람이 2006년에만 28만명이고 그 금액만도 1683억원, 그중 공무원이 4만명이라는 내용을 공개하였다. 그러자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 10일 부랴부랴 직불금 부정 수급 대책 등을 담은 ‘쌀소득 등의 보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농민들은 왜 그동안 정부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는지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고들 한다. “높은 자리에 있건 낮은 자리에 있건 공무원들이 해먹고 국회의원이 해먹으니까 여직까지 근절책을 내놓지 않았던 겨.” “정부가 대책을 세워줄 것이라고 믿고 앉아 있었던 우리가 바보였당께.” 분노의 목소리에 “우리를 얼마나 하찮게 여겼으면 그러냐”는 깊은 한숨이 뒤잇는다.

국민 여론과 농민들의 분노를 의식했는지 정부는 공무원 및 공기업 임직원의 직불금 부정 수령 여부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한다. 공무원들의 자진신고를 통해 직불금 수령의 적법성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인데 여전히 허점이 보인다. 직불금 신청 공무원이나 배우자·직계존비속이 농지 소재지 시·군 또는 인접 시·군 거주자일 경우 실경작자로 인정한다거나, 공무원 본인이 영농활동을 했음을 증명하거나 농지 소재지 인근 농민 3명 이상의 확인서를 받아 제출할 경우 실경작자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사실을 들으면서 과거 어느 개그 프로그램의 대사가 떠올랐다. “대한민국에서 안 되는 게 어딨어?”

국회 역시 여야가 국정조사를 하기로 합의했지만 본말이 전도되고 정치공방으로 비화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정부와 정치권이 농민들의 분노와 상심을 헤아릴 마음이 있거든 당장 정치공방은 그만두고 부정 수령에 연루된 공직자 명단을 공개하고, 철저한 수사와 엄중한 처벌을 해야 한다. 차제에 쌀 직불금 부정 수령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한 ‘농지소유와 이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이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