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남북 관계 파탄을 바라는가 / 김지석

등록 2008-10-23 20:15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 논설위원
아침햇발
“통일과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도 달라져야 합니다.… 그동안 통일에 비해 평화의 가치를 과도하게 내세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평화와 통일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추구해야 할 우리의 가치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하순 민주평통 국내지역회의 개회사에서 한 말이다. 통일과 관련해 새로운 접근을 추구하겠다는 뜻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난 1일 연설과 비교해보면 이 발언의 의미가 분명히 드러난다.

“나는 평화를 통일에 우선하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통일 방안의 일환으로서 또는 통일에 이르는 과정으로서의 평화가 아니라, 통일과는 별개의 독립적인 가치로서 대북정책의 고유한 목표로 설정해, 평화 정착을 위한 전략을 말하고 평화 계획을 추진해야 합니다. 그래야 평화 정착에 진전을 볼 수 있고, 통일도 앞당길 수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무엇보다 이전 노무현 정부의 평화우선론과 선을 긋겠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정부 안팎 인사들이 거론하는 조기통일론과 맥이 닿아 있다. 그 구체적 표현은 북한붕괴론과 대화 무용론이다. 이기택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지난 22일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통일에 이제라도 서둘러 대비해야 한다”며 “북한에 핵이 존재하는 한 어떤 남북 교류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단언했다. 서재진 통일연구원장도 지난달 하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발표되면서 통일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남북이) 아무리 대화해 봐야 소용없다”고 했다. 이들이 이런 말을 공공연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가 정부 안에 적잖기 때문이다.

북한붕괴론은 고비 때마다 유령처럼 나타나 대북 정책을 왜곡해 왔다. 몇몇 학자들은 2006년 북한 핵실험을 전후해 북한붕괴론을 집중 제기했고,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는 출범 이후 몇 해 동안 악의 축 논리와 북한붕괴론을 대북 압박의 근거로 삼았다. 북한붕괴론이 최고조에 이른 때는 북한이 몇 해 연속 자연재해를 당하고 황장엽 조선노동당 비서가 망명한 1997년께였다. 당시 국내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북한 급변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상하게도 그해 말 우리나라가 아이엠에프 위기를 맞자 북한붕괴론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북한붕괴론자들은 남북 관계가 지금보다 더 나빠지기를 바라는 듯하다. 개성공단 사업을 비롯한 이전 정권의 모든 성과를 원점으로 되돌리고 대북 압박에 초점을 둔 새 남북 관계를 짜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당연히 남북 사이 잠정적 평화구도는 적대적 구도로 바뀌어 긴장이 일상화할 것이다.

물론 정부가 공개적으로 북한붕괴론을 내세운 적은 없다. 이 대통령은 최근 프랑스 신문 <르 피가로>와의 회견에서 “북한 사회가 그렇게 쉽게 붕괴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얼마 전 러시아 방문 때 현지 언론인과의 간담회에서는 “통일을 위해 무리하게 북한이 어려울 때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전 정권과의 차별화에 집착하다 보니 정부 내 분위기는 조금씩 북한붕괴론 쪽으로 기울어진다. 남북 관계 개선 노력보다는 급변 사태 대책 논의에 치중하는 모습이 그 가운데 하나다. 북한 내 ‘인도주의적 비상사태’를 예고하는 세계식량계획의 호소도 공허한 메아리에 그친다. 그러는 사이 북쪽은 지난주 <로동신문> ‘논평원의 글’을 통해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 이행을 촉구하며 “남북 관계의 전면 차단을 포함한 중대 결단”을 경고했다.

정부는 과연 모든 남북 관계가 끊기길 바라는가. 그렇지 않다면 늦기 전에 행동에 나서야 한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