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
유레카
우라늄235와 플루토늄239는 핵무기 원료로 쓰이는 핵분열 물질이다. 이들을 임계상태로 만들어 연쇄적 분열반응을 일으키려면 기폭기구가 필요하다. 이 가운데 포신형은 한 분열물질을 다른 분열물질에 던져넣어 임계상태를 유도한다. 반면 내파형은 강한 힘으로 분열물질을 급격히 압축시킨다. 그러면 원자핵 속 양성자와 중성자의 결합이 연쇄적으로 풀려 오그라들며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한다. 이렇게 안으로 무너져내리는 것을 내파(implosion)라고 한다.
내파 과정은 세계를 구성하는 여러 시스템의 작동 방식과 관련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시스템의 기본단위들은 많은 에너지를 갖고 있다. 둘째, 평시에는 이 에너지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셋째, 에너지의 이런 균형 상태를 깨려면 큰 외압이 필요하다. 넷째, 한곳에서 균형이 깨지면 연쇄반응이 일어나 전체 시스템을 뒤흔든다. 내파는 인류 역사에서 심심찮게 나타난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진행된 소련·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가 대표적 사례다. 외압이 결정적 구실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서방과의 체제 경쟁이 사회주의권 전체에 지속적 압력으로 작용한 건 분명하다. 세계적 경제위기를 불러온 미국 월가의 붕괴는 내파의 최신판이다. 그런데 월가는 외압이 아니라 스스로의 모순에 의해 무너졌다. 원자핵이 스스로 외부 에너지를 빨아들여 찌그러진 듯한 일이 일어난 셈이다. ‘자발적 내파’라고 할 만하다. 실제로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이후 월가에 강한 외압을 가할 주체는 어디에도 없었다.
금융은 경제 시스템을 떠받치는 기본 에너지다. 세계는 이 에너지의 균형 유지라는 과중한 부담을 월가에 떠넘겼고, 월가는 내파로 화답했다. 각국 정부가 세계화 시대에 상응하는 책임을 회피한 대가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