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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홍세화칼럼] 교원평가제의 전주곡

등록 2008-10-26 20:23수정 2018-05-11 16:02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칼럼
최근 각 시도 교육청은 ‘2008 교사 다면평가 시행계획’을 내려보냈다. 학교마다 교장·교감의 주관 아래 교사들로 평가단을 구성하여 동료 교사들의 ‘교육자로서의 품성’과 ‘공직자로서의 자세’를 평가(각 10점)하고, 학습지도(40점), 생활지도(20점), 교육연구 및 담당업무(20점) 능력을 평가하라는 것이다. 평가 결과를 승진에 반영함으로써 현행 관리자 중심의 근무성적 평정을 보완한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이 나라 교육청 관료들의 교양 수준을 가감 없이 드러낸 일이다.

이 제도에 따르면 앞으로 각 평가 요소와 항목마다 30%의 교사가 ‘수’를 받고, 40% ‘우’, 30% ‘미(또는 20% ‘미’, 10% ‘양’)를 받는다. 이른바 상대평가로 같은 학교 교사들 사이가 ‘수’나 ‘미’의 점수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평가 요소 모두에 문제가 있지만, 가령 다른 교사의 ‘학습지도’ 능력을 어떻게 평가한다는 건가. 시시티브이(CCTV)를 설치하여 각 교사의 학습지도 모습을 관찰하겠다는 건가. 그래서 교사들끼리 서로 감시하고 의심하고 반목하고 질시하기를 바란다는 건가. 학습 결과에 따라 사회적으로 차별하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지적 인종주의’를 내면화하여 학생들을 암기와 문제풀이로 일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기를 해온 교사들에게 돌아온 부메랑치고는 몰상식, 몰지각을 넘어 야만의 경지다.

이 다면평가제는 내년부터 강행하겠다는 교원평가제가 어떤 몰골로 우리 앞에 다가올지 예고한다. 사방에서 “대학교수도 평가를 받는데 교사도 평가를 받아야 한다”, “교사는 철밥통이냐?”라며 교원평가제를 받아들이라고 아우성이다. “교사의 질이 교육의 수준을 규정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맞다. 하지만 “교사를 어떻게 대우하는가”도 그 나라의 교육 수준을 규정한다.

자질이 떨어지는 교사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은 주로 평가 대상이 아닌 평가 주체 쪽에 있지 않을까? 사학재단과 학원의 돈과 교장·교감의 격려금으로 선거자금을 쓴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이 보여주듯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에서나 “악화는 악화이기에 더욱 유유상종한다”에서나 한국의 교육계는 선두를 달린다. 교육의 세 주체인 학생, 교사, 학부모가 아닌 교장과 이사장이 주인인 학교, 여전히 촌지나 불법 찬조금 등 ‘회색의 돈’이 오가는 학교, 그래서 대부분 책보다는 돈에 더 관심이 많은 교장과 교감이 관리하는 학교에서 자질 있는 교사란 과연 누구인가. 기어이 다면평가든 교원평가든 해야겠다면 사전 정지작업부터 할 일이다. 학교를 촌지와 불법 찬조금에서 해방시키고 교사회·학생회를 법제화하여 학교를 민주화한 다음에나 평가를 하더라도 할 일임을 모르는 체하는 것은 무식하기보다는 뻔뻔하기 때문이리라.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참교육에는 관심이 없다. 제 자식 특목고-상위권 대학에 보내는 데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전교조가 “전교조에 휘둘리면 교육이 무너집니다”라는 기막힌 수모와 함께 정치적 패배를 겪은 것은 참교육 때문이 아니다. 경제동물의 사회로 더욱 추락하는 땅에서 민주주의 역량이 곳곳에서 시련당하는 때, 지역에 밀착한 참교육 실천이 부족하다고 전교조를 비판하는 일과 교원평가제를 동의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여야 한다.

교사들은 당장 다면평가제를 거부해야 마땅하다. 미친 교육의 마름이나 머슴이 되지 않겠다면 말이다. 교사들이 자존 하지 않을 때 그 누구도 존경은커녕 배려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홍세화 기획위원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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