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
시론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유사한 형태의 작은 사고가 29번 발생하고 이상징후가 300번 이상 나타난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세계경제 위기의 징후는 얼마나 많았을 것이며, 그런데도 대비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학자들은 미국의 모기지 대출, 가계부채, 부동산 거품, 재정적자, 무역적자, 국가채무, 외채의존도, 금융산업의 비대화, 금융산업 종사자 임금 비중 등 많은 경제지표가 역사적 추세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경고해 왔다. 한편에서 모기지 대출을 받은 서민들이 몰락하며 연체율·차압률도 급속히 상승하고 있었다. 하인리히의 법칙대로 수없이 많은 경고가 있었던 것이다.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는 1929년의 대공황 이후 두 번째다. 위기가 발생하기 이전 극우 친기업 정부가 들어서 부자와 대기업 위주의 감세를 통한 경제성장을 추구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금융 규제완화는 대세였고 금융의 건전성 감독은 뒤편으로 밀렸다. 소득분배는 악화된 반면 부동산과 주식에 대한 투기는 기승을 부렸다. 마침내 1929년 10월 주식시장이 붕괴하며 대공황이 시작되었고, 2008년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위기를 촉발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시장 참여자의 이성을 마비시킨 것일까? 뒤돌아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집단적 주술에 빠진 광신도 집단처럼 시장 만능만을 외쳐댔다. 1920년대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거품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때마다 자유방임주의라는 이름의 시장만능주의가 압도했다. 2000년대에는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라는 유행어가 생길 정도로 주식과 부동산 거품이 만연하였다. 일부에서 정부의 조처를 요구했지만, 그린스펀을 비롯한 월가의 금융전문가들은 사전적으로 거품을 인지하고 예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태도를 견지했다. 그것은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시장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며, 시장의 자정능력에 대한 강고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부의 조처는 친기업주의에 배치되는 행위였다.
그 결과 상환능력이 의심스런 모기지 대출에 근거한 파생상품을 끊임없이 만들어냈고, 신용평가기관들은 그 부실한 채권에 우량 등급을 발부했으며, 위험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도 알 수 없는 불투명한 시장상황에서 투자은행들은 자기자본 대비 수십 배의 채권을 발행했다. 중앙은행은 끝없이 단기 정책금리를 낮추었으며, 투자은행들은 이 낮은 금리를 이용하기 위해 부채의 30%를 매일 상환하는 극도로 위험한 자금운용을 일상화했다. 미국의 성장을 이끌며 천문학적인 수익을 가져다주는 금융산업에 대한 경고는 메아리 없는 외침일 뿐이었다.
이제 시장만능주의와 친기업주의라는 광기가 시장의 합리성을 압도할 때 필연적으로 위기가 도래함은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해졌다. 뒤늦게나마 전세계가 이성을 되찾아 합리적 시장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을 때, 외환시장이 불안정한 작은 개방국가인 한국의 이명박 정부는 아직도 시장만능주의와 친기업주의의 광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냉철하게 금융위기를 바라보고 각계의 의견을 경청하여 최선의 대책을 마련하려는 합리적 태도는 찾아볼 수 없다. 경제위기라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부자를 위한 종부세 폐지와 감세를 추진하고 재벌을 위한 금산분리 정책을 천연덕스럽게 내놓는 모습에 섬뜩하다.
한국 경제 역시 시장만능주의와 친기업주의라는 광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침몰하고 말 것인가?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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