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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대통령이 안 보인다 / 여현호

등록 2008-10-30 19:38

여현호  논설위원
여현호 논설위원
아침햇발
“대통령이 안 보인다.”

무슨 소리냐 하겠다. 옛날 ‘땡전뉴스’와 똑같진 않아도 사장이 바뀐 공영방송의 9시 뉴스엔 매일같이 대통령 동정과 말씀이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이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도 사실이다. 며칠 전에도 국회에 나가 “외환위기는 없다”고 강조했다. 연일 “이 위기에 잘 대처하면 고속 성장할 것”이라고 국민을 격려한다.

하지만 메아리가 없다. 사람들이 그의 말에 힘을 얻는 것 같지가 않다. 미국과 맺은 통화 스와프 협정으로 외환시장은 한시름 덜었다는데, 찌푸린 얼굴들은 펴지지 않는다. 서울역 앞 택시 행렬은 길어지고, 상가에는 폐업 쪽지가 늘어난다. 낙관은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대통령은 국민적 단합을 강조했지만, 외환위기 때의 금모으기 운동을 떠올리며 한나라당 의원들이 벌인 ‘지갑 속 달러 모으기’ 이벤트는 아무런 반향 없이 사그라졌다. 외국언론이 한국을 두고 ‘가라앉는 느낌’(sinking feeling)이라고 표현한 데 대해선 악의적 의도라는 의심이 많긴 하다. 그러나 한번 이겨내 보자며 다들 어깨를 겯었던 외환위기 때와 다른 분위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에둘러 말할 것 없다. 분주한 대통령은 있되, 위기 극복의 비전을 제시하며 힘을 결집해내는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사람들이 대통령에게서 힘을 모아주어야 할 리더의 모습을 찾지 못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단지 느낌만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이나 그 측근들이 스스로 그런 평가를 자초하고 있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한나라당 최고위원회는 당 안팎에서 무성하던 강만수 경제팀 경질론에 대해 ‘불가’ 결정을 내렸다. 당내는 물론, 보수 지지층에서조차 경질론이 대세였던 것과는 다른 결정이다. 대통령 뜻이라지만, 회의를 전후해 경질 불가를 공공연히 밝힌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의 뜻일 수도 있다.

최고위원회에선 “경제 수장에 대한 공격은 대통령 리더십에 대한 공격이다”라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같은 편’의 문제 제기조차 참지 못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무조건 나를 따르라는 게 리더십이라고 착각한 탓일 수도 있다. 그런 일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여름 불교계를 달래자며 어청수 경찰청장을 경질하자는 건의가 당 지도부에서 나왔을 때도 청와대는 이를 보란 듯 일축했다.

그렇게 일사불란만 요구하는 리더십이 힘을 모으긴 어렵다. 자기편의 말도 도통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완장’을 찬 ‘졸개’ 말곤 사람들이 남아 있을 수가 없다. 한나라당 안에서 박근혜 전 대표 세력이 알게 모르게 부쩍 커진 건 그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이미 강남의 호텔 커피숍, 골프연습장 등에선 대통령 비판이 수위를 넘어선 지 오래라고 한다. 보수세력의 이반일 수 있다.

야당이 지난 9월 영수회담에서 경제 살리기를 위한 초당적 협력을 약속했는데도 여권이 끝내 갈등과 대치로 이끈 것 역시 편협과 무능을 탓할 문제다. 위기에선 지켜보는 국민 눈길 때문에라도 서로 협력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싸움을 부르는 일만 저지르고 있으니, 위기의 리더십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지금 이 대통령 주변에선 자신들 중심으로 다시 전열을 정비하자는 논의가 있다고 한다. 두루 힘을 모으자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런 게 리더십 강화라고 생각한다면 위기를 벗어나긴 갈수록 힘들어진다.

어려운 시기, 회사를 경영하는 ㅈ형은 힘들 때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를 왼다. “저것은 벽/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그때/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결국 그 벽을 넘는다”

위기는 그렇게 함께 넘는다. 그게 리더십이다.

여현호 논설위원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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