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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동아일보의 변명 / 박종만

등록 2008-11-02 22:16

박종만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
박종만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
시론
사람은 누구나 크든 작든 잘못을 저지르며 산다. 그러니 사람이다. 사람은 또 누구나 제 잘못을 뉘우치며 산다. 그러니 사람이다. 크나큰 악행을 저지르고도 조금의 뉘우침이나 부끄러움도 없는 이라면, 비록 껍데기는 사람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진짜 사람이라 할 수 없다. 집단도 마찬가지다.

지난주 발표된 진실화해위의 ‘75년 동아사태 진상조사 결과’에 대한 <동아일보>의 반응을 보면 그 신문엔 정말 희망이 없어 보인다.

동아일보는 터럭만큼의 반성도 없이 회사 쪽에 유리한 부분만 인정하고 불리한 부분은 변명으로 일관했다. 마치 고장난 축음기를 틀어놓듯, 75년 사원 대량 해임의 출발점이 된 이른바 ‘기구축소 해임’은 광고탄압으로 야기된 경영상의 문제였다는 강변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의 허구성은 당시 여러 정황이 방증한다.

75년 3월 이른바 ‘기구축소 해임’이 단행되자 전 사원은 “단지 경비절감을 위해 내린 어쩔 수 없는 조처라면 사원 전원의 임금을 인하하여 같은 효과를 거둬 달라”고 경영진에 읍소했다. 이 간곡한 건의에 회사 쪽은 기자 2명의 추가해임이라는 초강경조처로 대답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동아 사원들의 해직 소식이 알려지자, 격려광고 등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던 신·구교 여성단체 지도자들이 김상만 사장을 방문해 “신·구교 여러 단체에서 해임사원들의 인건비를 책임질 테니 그들을 복직시켜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자 김 사장은 경영이 어려워 기구 축소를 단행했다던 종전의 말을 바꿔 위계질서 문란이 해임 사유라고 말하면서 제안을 거부했다.

동아 주장대로 경비절감이 ‘기구축소 해임’의 유일한 이유였다면 회사 쪽이 이러한 제안들을 모두 일축할 까닭이 없었다. 그뿐인가. 그때가 언제인가. 자유언론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국민적 열망이 동아에 대한 격려광고로 표출되면서 전국을 달아오르게 하던 때가 아니었던가.

기자들은 이성을 잃은 회사 쪽의 잇따른 강경조처를 보고 20명에 이르는 사원 해임의 의미를 간파했다. 그래서 경영진이 이성을 회복하기를 촉구하며 부득이 제작거부 농성으로 맞섰다. 그러자 회사 쪽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날 밤 늦게 기자협회 분회와 노조 임원을 비롯한 17명을 또 해임했다.


동아일보는 또 “75년 7월 광고 재개를 위한 중앙정보부와의 협상 과정에서 편집국장 등 5개 주요 간부의 인사를 사전에 협의하라는 중정 쪽 요구를 수용했다”는 진실화해위 발표도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당시 김상만 사장과 퍼시픽호텔의 한 일식집에서 마지막 협상을 벌인 중앙정보부 고위 인사의 증언을 통해 밝혀진 것인 만큼 그 진실성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 당시 동아 쪽에서 협상에 임한 김상만 사장과 이동욱 주필, 그리고 모든 비밀을 알고 있을 만한 김병관 전 회장이 모두 고인이 되었으니, 지금 동아일보사 안에는 당시 사정을 소상히 알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 수치스런 일들을 기록으로 남겨뒀을 리도 없고 자식들에게 알려줬을 리도 없다. 동아일보사가 진실화해위 발표를 반박하는 자료로 내세우는 것은 이동욱 전 주필이 제출한 답변서뿐인데, 과연 누구의 말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하겠는가.

이제 더는 손바닥으로 햇빛을 가리려는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은폐하려 해도 때가 되면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다. 동아일보가 할 일은 딱 한 가지, 그동안의 모든 과오를 진심으로 참회하고 신문다운 신문을 만드는 일뿐이다.

박종만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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