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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짐승이름] 뻐꾸기 / 정호완

등록 2008-11-05 21:58

짐승이름
“낮에 우는 뻐꾸기와 밤에 우는 두견이도 저 아무개와 같이 돌아갈 수 없는 신세여서 저렇게 우짖는가. 아무개가 저승사자를 따라서 수천 리를 가다 보니 커다란 산이 우뚝 길을 막고 서네. 그 산은 바람도 쉬어가고 석가세존도 머리 깎고 쉬어 가던 단발령이라네 ….”(서산 무속신화)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 죽은 사람의 원통함을 풀어주려는 산 사람들의 바람을 노래한 것이다. 이 전설은, 뻐꾸기와 두견새는 살기 좋은 곳을 떠돌다가 이땅에 터를 잡고서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려고 그리 운다는 사연이다. 저승으로 간 이의 영혼이 마치 새들의 신세와 같음을 은유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죽은 이의 영혼이 뻐꾸기로 환생하여 울음으로써 애달프게 호소한다. 일종의 윤회라고 할까. 때로 뻐꾸기는 우리가 바라는 이상향을 상징하는 파랑새로 등장하기도 한다.

 “날아가리 내 아가의 곁으로 돌아가리. 뻐꾹새가 많이 날아와 우는 동리”(<뻐국새 우는 마을>·장만영)

 옛말에 뻐꾸기는 ‘버곡댱이, 버국새, 버국이, 벅국이, 벅국새’ 등으로 나온다. 고려의 노래 유구곡(維鳩曲)에는 ‘버곡댱이’로 나온다. 한자로 적어 포곡(布穀·역어유해)이라 했으니 풍년에 대한 기원을 드러낸 셈이다. 새들의 이름 가운데는 소리시늉 이름이 많다. 뻐꾹새 또한 우는 소리를 ‘뻐꾹’으로 적고 거기에 접미사 ‘-이’를 붙여 연철한 것으로 보인다. 

정호완/대구대 명예교수·국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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