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시론
2007년 초 미국 내 부실 부동산 부문의 국지적 위기로 시작된 서브프라임 사태가 이제 21세기 최초의 초대형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리잡고 있다.
초저금리와 달러화 리사이클링에 기반한 글로벌 유동성 붐은 부동산 거품 붕괴라는 지극히 ‘원초적인’ 충격에 직면해 와해의 길로 들어섰다. 부동산과 같이 현지에 고착되는 특성이 강한 실물자산을 금융·유동화함으로써 위험 관리, 아니 위험의 해체를 장담했던 현대 금융혁신이 기능장애에 빠진 탓이다. 그 결과는 광범위한 국제적 자산 디플레이션과 20세기 최대 악몽인 세계 대공황의 재발 우려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 각국 정부가 시장의 자율적 조정 기능에 대한 신뢰를 버리고 유례 없는 대규모 구제금융을 편성해 공조 개입에 나선 것은 그만큼 사정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대형 금융기관들의 연이은 파산위기로 이른바 ‘카운터파티 리스크’(거래 상대방 위험)가 본격화함에 따라 이제는 시장의 주요 작동자 누구도 상대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극단적인 위험기피와 디레버리징(자산 축소)이 기승을 부리고, “현금이 왕”인 양 유동성 각축전이 금융시스템의 근간인 국제 자금시장마저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중앙은행의 ‘최종 대부자’ 기능을 넘어 정부가 ‘최종 투자자’와 ‘최종 마켓 메이커’로 직접 나서고 있는 것은 이런 연유에 따른 것이다.
다행히 수조달러에 이르는 국제 정책공조가 가시화되면서 최악의 공황 양상은 점차 진정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현대 금융의 신경회로가 마비된 데 따른 후유증은 한동안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의 행로에 큰 질곡으로 남을 것이다. 이미 자금흐름의 왜곡으로 실물경제에 대한 자금공급이 차질을 빚는 것은 물론, 글로벌 유동성 경색은 외자 유입에 의존한 신흥시장의 위기를 재촉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국제 금융체계 개편, 혹은 국제 경제질서 재편 논의도 확산되고 있다.
이번 위기는 흔히 북대서양 금융위기로 불린다. 미국 경제의 화려한 부활을 주도했던 투자은행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현대 금융의 산파’ 월가의 생존이 위협을 받고 있다. 자금시장을 중심으로 한 ‘고도 금융의 본산’ 유럽 역시 토착적인 겸영은행의 위기에 시달리면서 과거 수십년에 걸친 역내 금융시장 통합의 역사를 원점으로 되돌리고 있다.
내심 ‘팍스 아메리카 시대’의 몰락을 조소하며 신브레턴우즈 체제의 도입을 서두르고 있는 유럽의 리더십이 초라해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신흥 대안’으로 각광받았던 중국이나 인도 혹은 러시아나 브라질도 아직은 마땅찮다. 글로벌 자금흐름의 경색으로 이들의 고성장이 더는 담보되지 않을뿐더러 자체 부실의 하중도 큰 때문이다.
다만 아직은 묵묵부답이고, 실로 어색하게도 지금 국제 금융위기에 크게 휘둘리고 있는 일본의 새 역할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일본의 서브프라임 노출은 구미 선진국에 비해 제한적이며, 최근 위험기피 심리의 확산에 따른 자금 환류 과정에서 일본 내 잉여 저축은 더 늘고 있다. 과거 일본의 “경제적 진주만 공습”에 대한 서구의 우려는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부분 퇴색하고 있다. 최근 중국이나 오일달러 자본의 미국 진출 시도가 직면해야 했던 보호주의 역풍은 오늘날 일본한테는 한층 느슨할지도 모른다.
1980년대의 좌절을 교훈 삼아 특유의 겸손함과 어눌함으로 무장한 일본의 조용한 부활이 새 대안이 될지, 아니면 또다른 악몽에 그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1980년대의 좌절을 교훈 삼아 특유의 겸손함과 어눌함으로 무장한 일본의 조용한 부활이 새 대안이 될지, 아니면 또다른 악몽에 그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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