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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혁명하기 좋은 날 / 정영무

등록 2008-11-10 21:00

정영무  논설위원
정영무 논설위원
아침햇발
어깨에 내려앉은 불안의 무게가 묵직하다. 세계의 역동성으로 볼 때 2~3년 지나면 경제 상황은 나아질 것이라는 분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유독 우리에게만 가혹한 시련이 내린 것도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오바마가 당선됐다. 그럼에도 외환위기 때보다 더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차라리 외환위기 때가 나았다. 얼싸안고 울고 웃기도 하고 시련에 맞선 눈빛이라도 성성했다. 지금은 만성적이고 그냥 서서히 가라앉는 느낌이다.

삶의 최전선에 홀몸으로 맞섰던 영세 자영업자들은 낙엽처럼 스러진다. 뼈 빠지게 일해도 가난의 굴레를 헤어나지 못하는 근로 빈곤층은 벼랑에 내몰리고 있다. 나무가 잘리고 숲이 갈아엎이듯 ‘사회의 파괴’는 앞으로 한층 가속화될 것이다. 한계계층은 전기·가스가 끊기고, 약값을 대지 못하고, 먹지 못하게 될 것이다. 도움을 받지 못한 실직자는 6개월 고비를 지나면 사회와 멀어질 것이다. 파괴된 사회는 고립된 쪽방의 군락을 만들고 잿빛 하늘 같은 장면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 사회가 예견된 불행으로 가고 있는데도 모두 손을 놓아버린 듯하다. 자기 앞가림에 바쁜 탓인가, 또는 자기 책임의 경쟁 논리를 당연하게 여겨 그런가. 불안의 근원은 집단최면에 걸린 듯한 무력감이다.

사회는 삶의 모태이자 경제의 토양이다. 경제도 건강한 모태에서 생명력과 건강성을 가질 수 있다. 사회는 또한 경제의 목적이다. 목적에 눈감고 수단에만 기대어 한쪽으로 너무 웃자란 경제가 제풀에 종창이 터졌다. 그 아픔을 모태인 사회가 받아주고 있다. 사회 생태계는 한번 파괴되면 되살리기가 요원하다. 경제는 강한 내성과 추동력이 있지만 사회는 없다. 성장의 신이 강림할 때까지 참으라는 것은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선제적이고 충분하며 단호한’ 대책이 필요한 곳은 우리 사회다. 사회의 건강성에 주목하지 않은 위기 대책은 소용없으며 사후 약방문이다.

오바마는 이상을 내세워 당선됐다. 새로울 것도 없는 평등과 지속 가능성이라는 이상이 호소력을 가진 것은 현실이 배반적이기 때문이다. 미국만이 아니다. 성장의 주술과 배반적 현실은 우리 사회도 그에 못지않다. 공허한 집착은 갈증과 각성을 낳는다. 지난해 대선 때 우리는 목말라했다. 미국이란 반면교사는 우리를 각성시켰다. 이윤 동기 외에 그 어떤 동기도 무력해지는 세계는 불안하고 황폐해 사람이 살 수 없다. 쓴맛을 본 우리는 다른 세상을 꿈꾼다. 무력감 너머로 깊고 충만한 혁명의 기운을 감지한다. 건드리면 터질 듯 혁명하기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멀쩡하나 쓸모없는 지방공항을 또 만들 것인가, 사람을 살릴 것인가. 넘쳐나는 사회간접자본이 아니라 턱없이 낮은 복지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쏟아져나올 실직자와 한계계층을 돌보고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혁명적 복지만이 희망을 주고 내수도 살린다. 복지혁명은 지금 필수다.

농업은 생명의 근본이고 전통문화와 지역사회를 유지하는 기반이다. 농촌이 사라진 도시를 상상할 수 없으며 농업이 끝장나면 고스란히 국민의 피해로 돌아간다. 에너지와 식량이 무기인 식량주권 시대에 쌀을 뺀 자급률 5%는 너무 취약하다. 먹을거리 안전과 일자리를 보듬는 농업을 희생시키고 요행을 바랄 수 없다. 농업혁명으로 터전을 다져야 한다.

국가는 경제 단위이기도 하지만 도덕과 행복의 단위다. 시장논리가 사회를 전면적으로 지배하는 것을 차단하고, 공적 사회 공간과 인문 문화적 가치들을 지켜내야 한다. 국가와 정부가 필요한 지점이다. 세계적인 모색의 시기를 밝힐 등대는 바로 인문혁명이다. 경기부양책이 아니라 혁명이 살길이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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